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중관춘(中關村), 모두가 세계 IT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곳이다. 그동안 세계 IT시장을 이끌어 온 실리콘밸리의 명성은 IT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명소’다. 그리고 중관춘도 “중국의 과거를 알려면 자금성을, 미래를 알려면 중관춘을 보아야 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중국 IT의 미래를 걸머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춘은 세계 최대 소비국이자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IT산업 전진기지로서, 1978년의 개혁 개방 이후 고속 질주를 거듭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힘을 한눈에 보여준다.
현재 세계 IT산업의 젖줄이자 메카로 지난날 화려한 수식어를 받아 왔던 실리콘밸리는 세계 경기 침체의 유탄을 맞아 비틀거리고 있는 반면 중관춘은 ‘경제 대국의 중국’이라는 휘광아래 떠오르는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이를 반영, 실리콘밸리는 벤처캐피털의 자금 제공이 점점 고갈되면서 빈 사무실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 중관춘내 8㎞에 펼쳐있는 전자상가 거리는 양쪽에 즐비하게 들어선 고층 벤처빌딩과 아파트 숲이 장관을 이루며 사람들 발길로 북적거리고 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10년내에는 대만의 신주(新竹)반도체 단지를, 그리고 20년내에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서슴없이 호언하고 있다. 컴퓨터·통신·인터넷·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IT기업이 밀집돼 있는 두 곳은 첨단 IT 클러스터(단지)로서 신생기업이 탄생하기 좋은 입지 여건과 세계적 대학을 인근에 가지고 있다는 비슷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63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중관춘은 14년에 불과해, 아직은 실리콘밸리의 인프라가 중관춘을 능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현재 2000년의 닷컴 붕괴 악몽을 교훈 삼아 바이오, 나노, 무선 같은 분야를 통해 또한번의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전문가들은 “출발은 실리콘밸리가 수십년이나 앞섰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중관춘이 원조인 실리콘밸리를 추월하는 날이 올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형성과정=실리콘밸리는 지역적으로 스탠퍼드 대학이 있는 팰러앨토부터 새너제이에 이르는 긴 지역을 일컫는다. 실리콘밸리의 원조기업인 휴렛패커드(HP)가 1939년에 설립되었으니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63년에 달한다. 실리콘밸리라는 말은 1971년 1월 ‘일렉트로닉 뉴스’라는 잡지에 게재된 ‘실리콘밸리, USA’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는데 크게 4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먼저 군수산업이 주도했던 2차대전부터 1950년대까지로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농업지역이었던 이 곳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수산업을 배경으로 한 첨단산업지역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군수산업은 그 자체가 첨단산업이라서 실리콘밸리의 첨단화에 크게 기여했다.
2단계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지는 시기로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이 꽃을 피운 시기다. 이 시기에는 반도체에 대한 높은 기술수준을 지닌 첨단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려들었으며 또 이들간에 경쟁원리가 작용, 반도체산업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60년대초에는 5개 기업에 불과했던 반도체업체 수가 70년에는 45개사 그리고 80년에는 80개사 이상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산업과 함께 개인용컴퓨터(PC) 산업도 함께 발전해 75년에 69개사에 불과하던 컴퓨터 생산업체가 80년에 113개사로 늘어났다가 85년에는 246개사로 껑충 뛰었다. 3단계는 소프트웨어와 멀티미디어 산업이 번성한 80년대 이후로 80년대 중반 일시적 불황으로 휘청거리던 실리콘밸리는 컴퓨터·정보통신·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으로 이내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혁신적인 멀티미디어 산업을 기반으로 대화형 오락·교육용 제품 등이 개발되면서 세계 IT산업을 주도했으며 2000년의 혹독한 닷컴 거품을 겪은 실리콘밸리는 현재 인터넷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10여년의 역사를 가진 중관춘의 지리적 위치는 보통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가 속한 하이뎬위안(海淀園)을 일컫는다. 그리고 중관춘의 원조가 된 과기원구는 다섯개 지역에 흩어져 있다. 실리콘밸리처럼 중관춘도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육성한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유명 대학 주변에 고시촌이 형성된 것처럼 중국의 대학과 연구소가 밀집된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됐다. 중관춘관리위원회에 의하면 중관춘과기원구로 출발했던 1988년 당시 면적은 75㎢에 불과했으나 3년전 국가급 하이테크개발구로 승격되면서 면적이 355㎢로 확대됐다. 이를 계기로 IT산업뿐 아니라 생명공학·신소재·광산업을 비롯한 첨단기술별 생산단지가 조성됐다. 관리위원회측은 “80년대는 선전 경제특구가, 90년대는 상하이 푸둥개발이 중국 경제를 선도했다면 2000년대는 중관춘이 주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원조가 HP라면 중관춘의 원조는 1988년 국무원이 베이징대 인근 주택가에 만든 ‘베이징시 신기술산업개발시험구’다. 당시 주택가를 밀어 버리고 개발구를 만들려다보니 땅이 부족했는데 이 때문에 부지가 모자랄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주변지역을 개발구로 편입시켜며 물리 적으로 영토를 넓혔다. 이때문에 중관춘은 하나의 연결된 단지가 아니라 뿔뿔이 찢어진 모습이 됐다.
◇인프라=실리콘밸리의 성공에는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반시설(인프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회사 설립 절차가 간단하고 창업을 도와주는 인큐베이터와 물주 노릇을 하는 벤처캐피털 그리고 경영컨설턴트 등이 군집을 이루고 있어 신생기업이 세계적 유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좋은 동반자가 됐다. 여기에 스탠퍼드대라는 세계적 대학이 우수한 인력을 충분히 공급, 실리콘밸리를 세계 IT기업들의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의 고장으로 변신시켰다. 특히 스탠퍼드 대학의 터먼 교수가 실리콘밸리 발전에 큰 공헌을 했는데 당시 터먼 교수는 우수한 졸업생들이 동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학생들을 설득해 실리콘밸리에 기업을 설립하도록 장려했는데 HP를 설립한 휴렛과 패커드가 대표적이다. 이점은 중관춘도 비슷하다. 중관춘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란 명성을 얻게 된데는 바로 인근에 밀집된 베이징대와 칭화대 그리고 중국과학연구원을 비롯해 약 70여 대학과 232개 연구소 그리고 여기에 종사하는 40만명의 고급 두뇌가 버티고 있기에 가능했다. 칭화대학이 직접 운영하는 기업만도 50개이상에 달하고 또 창업을 지원해 주고 있는 기업수도 200여개나 된다. 칭화대의 경우 이곳에서 이윤이 대학 이윤의 93%를 차지하자 캠퍼스와 인근부지를 활용한 창업단지를 대폭 확장하고 있는데 이런 열기는 인근대학으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중관춘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두뇌인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원천으로서 기술력의 심장부인 중관춘과 직결해 중국 IT산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중관춘의 인프라가 개선됨에 따라 창업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또 실리콘밸리에서 ‘한 수’ 배운 고급 인력들이 속속 중관춘으로 다시 몰려드는 ‘턴백’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칭화대의 창업 인큐베이터인 과학기술개발부에서 유학생 귀국 상담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 관계자는 “앞으로 귀국 유학생들은 자신들의 진로와 관련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는 중관춘을 비롯해 웬만한 지방 정부치고 이들의 유치와 지원을 위한 사업에 나서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항에서 중관춘으로 직행하는 길은 이미 넓게 확장됐으며 우중충한 작은 집들도 철거되고 컴퓨터와 통신기기 등이 넘쳐나는 빌딩에서는 벤처기업이 무럭무럭 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중관춘에 ‘풀뿌리 벤처’들이 잇따라 둥지를 틀면서 한 건물 건너 하나꼴로 ‘창업원’이란 간판도 넘쳐나고 있는데 중관춘에 거주한 한 IT기업 사장은 “중관춘이 상대적으로 중국내의 다른 IT지역과 비교해 볼때 머리(R&D)는 큰데 손과 발(자금·생산 기지)이 작은 편이라서 아쉽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주요 IT기업=실리콘밸리에는 원조기업인 HP를 비롯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오라클 등 컴퓨터업체와 인텔·AMD·LSI로직 같은 반도체 업체 그리고 e베이·야후 등 인터넷업체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 등 내로라 하는 세계적 IT기업들이 대거 몰려 있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만한 이러한 대형 IT기업들이 20여개가 넘는다. 최근에는 인터넷 이후를 이끌어갈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나노, 생명공학, 무선 업체들이 속속 둥지를 틀고 있다. HP 한개 기업이 올리는 매출이 우리나라의 일년 예산(110조)과 맞먹는 850억달러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이곳에서 올리는 매출액은 가히 천문학적 액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올 3월 말 현재 중관춘 입주 업체는 9000여개에 달하고 있다. 이중 1700개사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곳을 연구개발(R&D)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입주기업의 올해 매출액은 340억달러 정도인데 오는 2010년 매출액은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의 절반 규모인 7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관춘에 있는 기업들도 실리콘밸리 못지 않은 스타 기업들이 즐비하다. 중국의 대표적 인터넷포털 사이트인 신랑(新浪)과 쑤후(搜狐)를 비롯해 중국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인 롄샹(聯想) 그리고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베이다팡정(北大方正)과 같은 기업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 또 이들 현지업체 사이로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모토로라, 인텔, 미쓰비시, 후지쯔, 소니 등 내로라 하는 다국적 기업들도 ‘중국 상륙’을 알리며 자리를 잡고 있다. 중국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MS조차도 시애틀과 케임브리지에 이어 세번째로 R&D센터를 중관춘에 세웠다”며 중관춘의 저력을 설명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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