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서지 추룩-알카텔 회장 겸 CEO

◆‘위기는 새로운 지도력 확보의 기회’

 

 최근 전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서 통신서비스 사업자는 물론 통신장비업체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북미시장의 붕괴는 많은 통신 장비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북미시장이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통신장비업체들이 북미시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알카텔은 사업 영역이 유럽, 아시아 및 북미 등의 시장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그러나 통신장비 시장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현재의 어려운 시기가 ‘괴로움의 끝에 낙이 있다(There is a silver lining behind the cloud)’는 옛 속담이 어울리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확신하는 것은 현재의 불황이 끝날 것이고 통신시장은 여전히 높은 성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여러 통신장비업체 중에서 현재의 시장상황에 잘 적응하고 미래의 성장을 위해 착실히 대비하는 업체가 불황이 끝날 즈음 시장을 선도하는 새로운 리더로서 떠오를 것이다.

 현재 알카텔이 세계 최대의 통신 인프라 제공업체가 될 수 있었던 것에도 위기상황에서 미래 기술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서 지도력(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95년 필자가 회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알카텔은 통신장비, 에너지, 철도 및 우주 항공에서부터 와인농장에 이르기까지 130여개의 사업 부문을 거느린 거대 종합상사의 형태였다. 통신관련 매출 비중은 4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핵심사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는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이 나타나기 이전이었지만 필자는 알카텔이 통신분야에서 가장 강점을 잘 살려갈 수 있고, 통신분야가 우리의 생활을 변혁시키면서 거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급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100% 통신장비 회사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97년부터 본격화된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서 알카텔은 통신과 연관성이 없는 모든 사업분야를 매각해 나갔다. 금액으로는 무려 150억달러(약 18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이와 함께 알카텔이 가지고 있는 통신관련 강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자일랜, 뉴브리지네트웍스, DSC, 제네시스 등 10여개 업체들을 인수해 나갔으며 여기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입했다.

 M&A를 통한 토털 네트워크 솔루션 공급업체로의 변신은 유럽에 치중되어 있던 알카텔의 비즈니스를 미국을 포함한 북미지역과 아시아지역 등으로 확대시켜 진정한 다국적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알카텔은 2001년, 100% 통신장비업체로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으며 253억유로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로 올라설 수 있었다. 또한 130여 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명실상부한 다국적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장상황에서의 지도력=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시장에서의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필자는 그동안의 알카텔의 경험을 예로 들어 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최우선 단계는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는 것이다.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과 현금창출을 위한 방안이 동시에 강구돼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알카텔은 97년부터 ‘공장 없는 회사(fabless company)’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휴대폰 단말기, 통신 반도체 등 굵직한 생산부문을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고 있으며, 98년 250여개에 이르던 생산시설은 매각 및 분사를 통해 2001년에 이르러서는 100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아웃소싱으로 동일한 품질이 보장될 수 있는 기술 및 제품에 대해서는 아웃소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경기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가 현실에 대한 적응과정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지 않은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R&D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된다. 알카텔은 지난 2001년 한해동안 전체 매출의 11.3%에 해당하는 약 29억유로를 R&D에 투자했다.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수만 직원 5명 중 1명 꼴인 2만2000명에 이르며 알카텔이 확보하고 있는 특허건수는 총 5000개가 넘는다.

 이와 함께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강화해 나가면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불황에서 북미지역에 사업을 집중했던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서도 보듯이 특정지역에 사업을 집중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으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장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경쟁력 하락과 직결되는 요소다.

 알카텔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꾸준히 강화하면서 현재 전체 매출의 40%를 서유럽에서, 17%를 북미지역에서, 18%를 아시아지역에서 담당, 특정지역에 의존적이지 않은 매출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아시아지역에서 지난 3년 동안 약 3배의 성장을 이루면서 18%라는 높은 매출비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태시장의 높은 성장성을 인식, 2002년 1월 아태본부를 상하이에 설치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태지역 고객들과 협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알카텔은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사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곳에 사업 본부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광대역 네트워크 사업본부는 캐나다에 있고, 광전송 사업본부는 이탈리아에 있으며 전자상거래(e-Business) 사업본부는 미국에 있다. 각 사업 본부는 스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미래를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물론 재무, 인사, 영업 마케팅 등도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이와 함께 통신업계의 미래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제품군에 집중하는 것이 미래 지도력 확보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며 해당 분야를 선도하기 위한 선택적인 인수도 한가지 대안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주력 제품군을 선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함과 동시에 투자 및 기술 개발에서 확신을 가지고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알카텔은 일반 고객은 물론 기업 고객들에도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고 빠른 접속이 보장되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대두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DSL에 투자를 단행, 성공을 거둔 바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DSL의 성공여부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막대한 R&D 비용이 소요되고 수요가 있는 확실한 시장도 없는 상황이었으나 알카텔은 확신을 가지고 집중 육성한 결과 오늘날 DSL 분야에서는 명실상부한 선도업체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알카텔은 차세대 네트워크(NGN), 3G 등 최신의 기술 분야에 집중하면서 차별화 된 접근을 통해 고객들과의 상호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3G 분야에서 알카텔은 일본의 후지쯔사와 제휴, 세계 최초로 NTT도코모에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으며 전세계 각지에 ‘3G 리얼리티 센터’를 설립, 통신사업자는 물론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들과 협력을 통해 차세대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알카텔의 이같은 노력은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제품군을 최우선으로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결국 미래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는 제품군들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통신사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기업 및 개인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통신업계가 원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선 통신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당연하게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동시에 새로운 서비스로서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기를 원할 것이다. 따라서 멀티서비스가 가능한 단일 네트워크의 구축과 새로운 서비스 수용을 위한 향상된 네트워크 기능 및 관리를 위한 솔루션, 네트워크 진화를 위한 최적화 솔루션 등이 대두될 것이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밝다=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거품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급성장을 이루던 통신산업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통신 기술이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지금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면서 우리의 생활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 사용의 증가에 따른 데이터 및 멀티미디어 트래픽은 지금도 급증하고 있다. 당연히 통신사업자와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통신장비업체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최근의 세계 통신시장 불황과 무관하게 날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태지역의 통신사업자들은 새로운 사업확장을 위한 자금 확보도 용이한 편이며 최신의 통신기술들이 아태지역에서 선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3G와 브로드밴드에서 세계 시장의 리더인 한국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알카텔의 CEO로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언제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빠른 미래에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은 다시 한번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며 현재의 불황에 잘 적응하고 미래의 성장을 준비하는 계기로 삼는 업체가 새로운 리더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물론 알카텔도 현재의 위기를 시장에서의 새로

운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