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30일까지 양허안(Offer)을 제출해야 하는 WTO 문화산업 서비스 분야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문화산업 관련 전문가와 기업 및 소비자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내부협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이를 위해 국내 문화산업의 경쟁력과 세계 각국의 개방현황 및 주요 쟁점에 대한 철저한 연구·분석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8일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대비, 문화관광분야 협상방안 및 준비과제 모색’을 주제로 개최한 제6차 ‘CT 정책포럼’에 참여한 정부 및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은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문화산업 서비스 분야에 대한 WTO DDA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논의된 WTO의 문화산업 서비스분야에 대한 협상과정과 내용 및 앞으로 절차와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정리한다.
◇DDA 서비스 협상 절차 및 양허요청 내용=지난해 11월 15일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출범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인 DDA의 서비스협상은 각 회원국이 지난 6월 30일까지 양허요청안(Request)을 제출한 데 이어 내년 3월 31일까지 자국의 서비스시장 개방약속을 기재한 양허안을 제출하고 오는 2004년까지 협상을 매듭지음으로써 2005년 1월 1일부터 발효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우리나라는 문화사업분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해외진출 가능성 및 상대국의 개방수준과 우리와의 교역현황 등을 고려해 지난 6월 30일 중국·동남아 등 문화적 장벽이 비교적 낮은 23개국에 사업서비스, 시청각서비스, 오락·문화·스포츠서비스 등 3개 분야에서 광고, 출판·인쇄, 영화 및 비디오 제작·배급, 음반서비스, 공연서비스 등 5개 업종에 대해 양허를 요청했다. 현지법인 설립 및 투자제한의 완화와 철폐를 중심으로 한 각 분야의 시장접근 및 내국민대우 제한사항의 철폐, 기존 양허표상의 모호하고 불명확한 표현 및 규정의 명료화, 국제적 분류체계(GNS/W120, UN CPC)에 따른 서비스분류 등이 핵심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중국·대만·홍콩·EC·멕시코·뉴질랜드·브라질·우루과이 등 10개국이 문화산업 분야에 대한 양허요청안을 제출했다. 이들 국가는 광고, 인쇄·출판 등의 사업서비스와 영화 및 비디오 제작·배급, 영화상영 및 영화관 운영 등 시청각서비스 및 뉴스에이전시(통신사)와 스포츠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현지법인 설립시 주식취득·투자 및 지사설립 제한 등 철폐, 현지법인 관계자의 체류기간 연장과 서비스 공급자의 허가 등을 요구했다. 특히 미국은 현재 공통 요구사항만 제출, 내달중 국별 요청안을 보내올 예정인데 방송광고·스크린쿼터·방송프로그램쿼터·엔터테인먼트·스포츠 등 미양허분야와 제한부문에 대한 전면적인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쟁점=이번 문화산업 서비스 분야 협상의 주요 쟁점은 우리측이 요구한 개방안을 어떻게 관철시키느냐와 미국의 시청각 서비스 개방요구 및 EC측의 뉴스제공업(통신사)에 대한 개방 요구를 어떻게 방어하느냐다. 특히 미국과 중국·홍콩·뉴질랜드 등이 요청한 스크린쿼터제 폐지문제는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EC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고 있는 분야인데다 국내에서도 관련업체 및 전문가들의 반대가 거세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분야다. 이밖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방송광고 독점판매 및 외국인 투자제한, 한국언론재단의 정부광고 대행독점 폐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대응방안=이날 참가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협상에 나서기 이전에 우리의 협상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내부협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전연구를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옵저버로 참여했던 외교통상부의 우기화 사무관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에서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쟁에 나서 장열히 산화해야 하는 ‘계백장군’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며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기 위해 개방한 부분이 많아 전반적인 문화분야의 개방수준이 높은 만큼 이같은 상황을 십분활용해 타국의 개방수준을 높이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요구는 양자협상보다는 다자간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처럼 정부 및 문화산업 관련 기업들이 문화상품 수출시장 확대를 위해 이번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 반면 순수 예술단체의 경우는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를 WTO의 협상대상으로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관련,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이미 46개국이 세계문화장관회의(INCP)에 참여, ‘공동제작협정’을 맺음으로써 다국적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시청각부문에 대한 개방협상을 피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우리도 양허요청안을 철폐하고 ‘공동제작협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