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게임문화 현장을 가다>(8)대만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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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경제지표상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1억4000달러를 넘어 한국보다 4000달러가량 많다. 외환보유고도 1100억달러에 달해 일본과 함께 아시아 부국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대만은 최근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진 반면 실업률은 4%를 넘어 정부가 경기부양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의 IMF’와 비슷한 상황이 대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대만은 최근 IT산업의 주도권을 라이벌인 한국에 내주면서 적지않은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에 대규모 투자자본이 중국으로 몰리면서 경기침체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대만 게임산업은 고속성장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만 IT조사기관인 자책회 조사에 따르면 대만 게임시장 규모는 지난 99년 이미 35억NT달러(한화 약 1조3000억원)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53억NT달러(한화 약 2조원)를 넘어섰다. 이같은 성장세는 올해에도 지속돼 62억NT달러(한화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황금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전체 시장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보다 2배나 큰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만 게임산업이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지난 99년부터 시작된 PC게임 저가화 정책과 편의점을 통한 유통구조의 다변화가 먹혀들며 게임의 대중화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게임시장은 PC게임과 PC기반 온라인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전체 시장의 70%를 PC게임이, 30%가량은 온라인게임이 차지했을 정도다. 이는 업소용 아케이드 게임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데다 비디오 콘솔게임이 올해부터 정식 유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90%를 넘는 높은 PC보급률도 PC게임 성장에 좋은 인프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온라인게임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대만 인터넷 이용자는 850여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150만∼200만명이 온라인게임 유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PC방도 크게 늘어 5000여개를 헤아릴 정도다.

 특히 온라인게임 유저수는 머지 않아 PC게임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자책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게임시장의 30%를 점유한 온라인게임은 올해 41%로 증가한 데 이어 내년에는 50% 수준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감마니아·소프트월드·소프트스타·제3파·화의 등 대만의 대표적인 게임업체들은 그동안 PC게임 개발과 유통에서 온라인게임 서비스로 사업방향을 급선회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수도 지난 2000년 ‘천당(리니지)’ ‘석기시대(스톤에이지)’ ‘삼국지온라인’ 등 3∼4종이 처음 서비스된 이후 3년만에 100여종으로 급증한 상태다.

 하지만 대만 게임업체들은 최근 들어 자체 개발보다는 외산게임 배급에 주력하고 있다. PC게임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슷한 개발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블리자드·EA 등 미국 개발사의 제품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고, 온라인게임은 한국 게임에 비해 작품성이나 네크워크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불법복제가 난무해 PC게임의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온라인게임 배급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PC게임의 경우 시에라온라인의 1인칭 슈팅게임 ‘카운터스트라이크’, EA의 농구게임 ‘NBA 라이브’, 블리자드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3’ 등 미국 게임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반면 온라인게임은 전체 시장의 80%가량을 한국 게임이 휩쓸고 있다.

 특이한 점은 현재 대만 온라인게임시장의 60%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천당’은 13만명의 동시접속자수를 기록, 한국보다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신작 ‘라그나로크’ ‘엔에이지’ ‘라그하임’ ‘뮤’ 등 3D 온라인게임은 최근 상용서비스에 들어가자마자 동시접속자 1만∼5만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대만 게임업체들이 게임 마케팅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출시된 ‘라그나로크’ ‘라그하임’ 등의 경우 홍보용 대형 걸개그림이 시내 곳곳에 내걸리는가 하면 TV광고까지 방영될 정도다.

 이에 대해 대만 게임업체 인스리아 이지건 사장은 “대만 게임업체들이 규모나 자금력에서는 한국 업체를 앞지른다”며 “한국 등 해외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입장에서는 개발보다는 마케팅 물량공세로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온라인게임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통신업체·창투사·건설업체·부동산업체 등 게임과 이해관계가 없는 업체들도 속속 온라인게임 퍼블리싱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소프트월드 알렉스 한국담당 매니저는 “대만 게임업체들은 한국에서 검증받은 온라인게임의 판권을 얻기 위해 수시로 한국시장을 조사하고 있다”며 “업체마다 게임마스터나 한국담당 직원을 통해 매주 보고서를 작성할 정도로 열성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한국 온라인게임 수입경쟁에 대해 대만 정부는 우려의 빛을 나타내고 있다는 게 대만 업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가뜩이나 IT산업 경쟁력이 한국에 추월당한 상황에서 한국 온라인게임이 대거 수입되면서 심각한 외화유출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만 정부가 게임중독을 이슈화하면서 온라인게임 윤리규제를 강화하려는 것도 이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고 대만 업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온라인게임 ‘석기시대’를 대만에서 서비스 중인 화의의 스티븐 장 부사장은 “대만 컴퓨터협회 월례모임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종종 외산게임 라이선스에 따른 국부유출을 우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한국 업체들은 많은 로열티 수입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대만 업체들의 풍부한 자금력과 마케팅력을 결합해 중국 등 제3시장을 공략하는 보다 입체적인 파트너십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타이베이(대만)=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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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 규제책

대만은 아직 게임과 관련한 법률규정이 미흡한 상태다.

 윤리규제와 관련해서는 PC게임의 경우 등급제가 시행되고 있으나 온라인게임은 아직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PC게임 등급분류도 게임업체들이 회원사로 참가하는 컴퓨터협회가 주관하는 업계 자율심의라서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는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게임중독과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외화유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정부가 규제의 칼을 뽑을 태세다. 특히 대만 정부는 지난 5월 ‘망가관리조례’라는 법률을 국회에 제출, 본격적인 온라인게임 윤리규제 조치를 강구중이다.

 이 조례는 청소년들의 PC방 출입을 제한하는 한편 학교 인근 반경 100m에는 PC방이 들어서지 못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온라인게임 등급제’도 시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움직임과 별도로 타이베이시도 PC방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타이베이시는 지난 여름방학부터 시장령으로 ‘PC방 이용수칙’을 정하고 위반하는 PC방에 200만원 가량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고 있다.

 이 수칙은 만 15세 이하는 부모를 동반하지 않을 경우 아예 PC방 출입을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만 18세 미만의 경우에도 수업이 있는 월∼금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밤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주말과 휴일 포함) PC방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타이베이시 PC방들은 이같은 수칙이 정해지자 손님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단속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온라인게임 서비스업체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PC게임은 자율심의를 고수하는 반면 온라인게임만 유독 정부가 직접 심의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부의 규제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PC방 출입 제한조치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도 가정 사용자를 단속할 뚜렷한 방안이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감마니아의 브라이언 창 마케팅 이사는 “대만에도 이미 온라인게임 사용자 가운데 가정 접속자가 70%를 넘어선 상태”라며 “PC방 규제나 온라인게임 등급제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