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컴퓨터통신 사장 강태헌thkang@unisql.com
실락원. 17세기 청교도 정신이 집약된 근대문학의 꽃봉오리라 찬사받는 대서사시로 40세를 넘어 눈이 먼 존 밀턴(1608∼1674)이 철저한 고립속에서 완성한 대작이다. 그는 종교적 갈등으로 부인과 이혼하게 되고, 청교도 혁명으로 공화제가 수립되자 그것을 지켜내고자 붓을 통해 크롬웰과 함께 군주체제에 강력히 대항했지만 노력에 대한 보람도 없이 왕정이 복구되자 사형에 직면해 은둔생활을 시작, 그리고 실명이 이어진다.
이렇게 가정적, 정치적, 육체적으로 실패해 고통을 겪었음에도 밀턴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세상을 희망하는 불같은 신념으로 실락원을 집필한다. 구약성서를 소재로 인간의 원죄를 다루고 있는 이 대서사시는 눈이 먼 존 밀턴의 입으로 구술되고 그의 딸이 받아 쓰는 고통 속에서 결국 그를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의 대 작가로 후세에게 밀어올린다.
무릇 어떤 소망이든 원하는 대상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또한 소망의 성취에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그 소원이 원대한 것이라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질 수 밖에 없다. 호박씨를 심어서 호박을 먹기까지 3개월이면 족하다. 하지만 도토리를 심어서 참나무 재목을 얻기까지는 족히 30년이 넘게 걸린다. 3개월과 30년은 자그마치 120배의 차이가 나는 만큼 쉽게 얻은 호박은 한끼 식사면 그만이지만 어렵게 얻은 참나무는 집으로 지어져서 백년, 천년을 흐르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소원을 성취하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루아침에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이뤄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중간의 피나는 노력보다 위대한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남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이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하는 것이다. 최고의 기술, 일등제품은 최고를 향한 강한 신념, 그것을 위해 오랜 시간을 헌신할 수 있는 인내와 정열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는 것은 멀리 존 밀턴이 아니더라도 우리 가까이에 많이 있고, 나는 그들의 성과가 나에게도 일어나길 바라며 오늘도 소프트웨어의 바다를 거칠게 항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