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음악 같지 않아서 좋아요. 이전 앨범보다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그가 노래를 잘해서 무조건 음반을 샀습니다.”
추석 전날 만난 한 여대생은 나오자마자 샀다는 박효신의 새 앨범을 들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여학생뿐만 아니라 새 노래를 학수고대한 10만명의 팬이 발매와 동시에 세번째가 되는 그의 신작을 구입하는 매진열풍을 일으켰다.
더욱이 이 앨범은 화려한 장정으로 꾸민 팬서비스 한정본이어서 구매욕을 자극했고, 그 안에는 박효신의 상반신 누드사진을 끼어놓아 화제도 유발했다. 한마디로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현재 가요계가 PR비 사태와 MP3 무료 다운로딩에 의한 최악의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모처럼의 판매열기라고 할 수 있다.
팬들이 박효신의 음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실한’ 목소리 때문이다. ‘어후 어후’하는 이른바 안정된 사자후(獅子吼)가 특색인 그의 소리는 록과 R&B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10대 댄스음악에 물린 20대 음악팬들에게 단비 역할을 한다. 음반 제작사나 박효신도 이 점을 자신하는지 앨범의 타이틀을 거창하게 ‘유서 깊은 목소리’(time-honored voice)로 붙였다.
앨범 작업자도 호화판이다. 신재홍·윤일상·김현철 등 최고 작곡가가 곡을 썼고 가사에는 윤사라·천성일·이소라·노영심 등 유명 작사자들이 참여했다. 프로듀서를 맡은 신재홍은 샘 리(기타), 이태윤(베이스)의 출중한 세션과 박효신의 소리를 잘 어울리게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사운드는 깔끔하면서도 무게가 있다.
그의 창법이 큰 변화가 없음에도 음악이 새로움을 띠는 것은 한층 세련되어진 편곡에다 재즈풍의 팝이나 랩에까지 영토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더러 곡 중에는 이를 위해 나름의 보컬 실험을 의도한 흔적이 있다.
박효신과 같은 음악은 결국 ‘곡’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타이틀곡인 신재홍의 ‘좋은 사람’은 이 점에서 박효신의 기존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확실한 멜로디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나비의 겨울’ ‘그 후’ ‘그녀를 알아요’ 등도 대중 흡수력을 갖춘 곡들이다. 하지만 초기에 자주 비교된 임재범이 박정현과 듀엣으로 불렀던 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리메이크한 것이 주의를 끈다. 신인 여가수 앤과 호흡을 맞춰 ‘임재범 돌파!’의 의도를 새긴 듯한 이 곡은 임재범의 보컬 색채와 유사하면서도 미세함에서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보컬 스타일리스트’로의 전진에 대한 충만한 의욕이 드러난 회심작이다. 하지만 그가 ‘유서 깊은 가수’로 장수하려면 좀 더 자유롭게 새로움을 실험해야 할 것이다. 포효하는 록은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분야로 생각된다. ‘뛰어난 보컬이라고 해도 패턴과 매력이 익숙해지면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임진모(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