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활약했던 조선시대 최초 야구단을 아시나요.’
10월 3일 관객을 찾아가는 YMCA야구단(감독 김현석·제작 명필름)은 잊혀진 과거에 대한 추억 더듬기를 시도하는 영화다. 1905년, 그 시대에도 야구단이 존재했다는 ‘신선한 과거사’를 발굴함으로써 억지 설정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과 가슴 찡한 시대적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 짚신 신고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이나 100년전 사용하던 말투를 통해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와 애정을 느끼게 된다.
본지가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로 마련한 9월 독자 영화시사회 이벤트가 27일 씨네하우스에서 열린다. 미들웨어 업체인 티맥스소프트가 협찬하고 명필름이 필름을 제공한 이번 행사에는 전자신문 및 이타임즈인터넷 독자 1500여명이 참석,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YMCA야구단은 암울한 일제 치하의 시대를 어둡게 다루는 것도, 독립투사나 영웅담을 말하려는 것도 아닌 그 시대에도 그저 야구가 좋아 야구단을 만든 어찌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관객들은 마치 100년 전 조선의 백성이라도 된 듯이 울고 웃는다. 월드컵 때 태극전사들은 그저 몸으로 뛰었을 뿐이지만 온 국민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전율했듯이.
글 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하는 선비 호창은 과거 제도가 폐지되자 젊은 시절의 유일한 꿈이었던 암행어사의 목표를 잃고 ‘돼지 오줌보’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YMCA회관에서 야구를 하는 신여성 정림과 선교사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정림에 대한 호감과 동시에 야구에 대한 호기심에 빠져들기 시작한 호창은 정림에 대한 감정을 키워가며 야구라는 신문물의 매력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 참에 종로거리에 ‘황성 YMCA 베쓰뽈 단원 모집’이라는 벽보가 붙는다. 가난으로 어린 나이에 지게짐을 지는 쌍둥이 형제, 명성황후의 호위무사였다는 정체불명의 사내, 좌판의 상인, 양반 등 호창과 정림을 중심으로 조선 최초의 야구단이 결성된다. YMCA야구단은 연전연승하며 최강의 야구단으로 자리잡고 황성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이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되자 야구단도 시대적인 격랑에 휩쓸린다.
영화 반칙왕에서 관객들에게 페이소스 짙은 웃음을 주었던 아버지와 아들 콤비, 신구와 송강호가 다시 만났고 정림 역에는 김혜수가 열연했다. 반칙왕에서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얘기했다가 신구에게 얻어 맞았던 송강호가 이 영화에서 바둑알 통으로 또 얻어 맞는 장면은 상당히 재미있다. 1900년대 초의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6억원을 들여 만든 오픈 세트와 여러가지 복식도 볼거리.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100년 전 말투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대부분 하오, 올시다로 끝나는 대사 처리가 유행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듯. 야구해설은 이런 식이다. “양팀 핏차의 눈부신 역투로 8회까지 영 대 영 이외다. 특히 Y팀의 오대현 핏차는 공을 던지는 지 팔을 던지는 건지 모르겠구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김현석 감독의 변을 들어보자. “99년 여름 막 출간된 ‘한국야구사’를 우연히 접했다. 김응룡이나 백인천 그리고 선동열 등이 한국사의 이순신이나 안중근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관심이 갔던 부분은 한국사라면 고조선에 해당할 한국 야구 초창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묻혀져 있던 100년 전 야구단이 야구광 감독과의 기막힌 조우에 의해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이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