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터>`메이드인 코리아` 活路 찾는다

 전자·정보통신 기기의 신경망 커넥터 제품은 다양한 IT부품군 가운데 가장 많은 총 40여만종이 존재하며 매년 4만개 정도가 새로 출시되고 그 수만큼이 사라질 정도로 용도가 다양하다.

 특히 커넥터 제품수는 80년대를 기점으로 시작된 IT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90년대말까지 후방산업인 IT기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대 들어서며 전자·정보통신 기기의 기능차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범용성이 퇴색되고 경박 단소화 및 협피치화로 말미암아 일일이 셀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광커넥터처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커넥터라도 소재를 달리해 생산하는 제품수가 다양해지는 것도 커넥터수를 늘리는 중요한 이유며 이전 단독제품에서 점차 반조립품의 상태로 제품이 증가하는 점도 수적 확대를 야기하는 한 원인이다.

 그러나 커넥터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가 올해에도 재현되고 있지만 올해 세계 커넥터 시장은 과거 두자릿수의 고성장을 보여온 것과는 달리 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커넥터 전문 리서치기관인 플렉리서치는 올해 전세계 커넥터 시장규모는 지난해 322억달러보다 29억달러 성장한 351억달러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부적으로 1분기 의료·밀리터리·항공 부문의 수요는 증가한 반면 텔레콤·컴퓨터 부문의 수요는 감소하는 등 지난해 1분기에 비해 저조한 양상을 보였으며 당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2분기에도 커넥터 수요가 더 이상 축소되지 않고 있지만 아직 대다수의 주요 커넥터 제조업체들이 텔레콤 시장의 저조로 인해 발생한 재고를 처리하지 못했다.

 특히 시장성장의 둔화속에서도 타이코·FCI·몰렉스·암페놀·델파이·히로세·JST·3M·JAE 등 세계 10대 커넥터 제조업체들의 전세계 커넥터 시장 점유율은 점차 증가하고 국내업체들이 대다수 포함되는 중소형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세계 10대 커넥터 업체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전년 38.2%에서 44.5%로 증가했으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가 중소형 업체들로 구성되는 국내 커넥터 업계는 더욱 고전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국내시장공략과 해외 유명업체들의 국내시장 점유율 유지 정책으로 벼량끝에 몰렸기 때문이다.

 기술력에서 한수위로 평가받는 일본을 비롯한 미국 등 서구 유명 커넥터업체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단가를 인하하고 있으며, 신규시장을 개척하려는 대만·중국 등 아시아 업체들도 국내 저가 범용 커넥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국내 토종 커넥터 업체들의 매출은 전체 4조2000억원 규모의 국내시장에서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4000억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업종별 시장상황을 살펴봤을 때 통신장비용·셋톱박스용·가전용 등 대부분의 커넥터업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전하고 있다. 중저가 중대형 고주파(RF) 커넥터로 지칭되는 정보통신용 커넥터와 일반가전용 전문 생산업체들은 차별화된 높은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후방산업의 신규투자 감소와 동종제품 생산업체간 가격경쟁이 격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90년대 후반 업계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중대형 RF 커넥터업체들은 요즘 반 개점휴업 상황이다. 전방산업인 국내 통신중계기 신규설치가 거의 끝남에 따라 새로운 매출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하반기에는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으로 반전될 것이라는 미국시장도 업계의 기대를 저버렸다. 새로운 시장으로 업계로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중국시장도 본격적인 설비투자가 발생하지 않아 매출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대형 RF 커넥터 부문의 경우 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대다수 영세업체들은 자금이 고갈해 머지않아 도산하는 기업도 속출할 것이라는 회색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들어 호조를 보였던 자동차용 커넥터 업계는 내년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용 커넥터 시장은 특소세 인하 혜택으로 신차 수요 증가가 증가해 8월말까지 호조를 보였으나, 지난달을 기점으로 인하기간이 종료돼 국내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이고 환율도 불안정해 수출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말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구매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등 계절적인 수요감소가 예상되고, 특소세 인하기간이 끝나면서 자동차 구매 해약사태가 줄을 잇고 있는 점도 부정적인 요소다.

 지난해에 고성장을 보인 셋톱박스용 커넥터 시장은 올해 업계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은 지난 분기에 해외 셋톱박스 시장의 제품 표준승인 지연과 계절적인 불황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급격히 위축됐으며, 아직도 제품 표준승인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아 관련 커넥터 수요의 회복속도가 더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나마 디지털 가전용과 휴대폰용 커넥터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일반 가전용 커넥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기술을 필요로 하고 시장이 호조를 보임에 따라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정도다. 하지만 중국이 다른 업종에서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국내 커넥터업체들의 기술을 흉내내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해외 유명업체들이 최근 단가인하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

 이같은 불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 그리고 연구소 등이 하나로 단결해 움직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영세한 업계는 스스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없는 만큼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산학연간, 업계 수위업체와 중소형 업체간 협업시스템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커넥터 업체들이 1개의 제품 생산에 필요한 디자인 금형 개발과 조립기 등 장비를 구입하는 데는 평균 1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돼 신제품 개발 및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세트업체들은 커넥터 업체에 제품 개발을 의뢰하고도 이를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 중소 커넥터 업체들은 선뜻 신제품 개발에 자금을 투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커넥터가 최근들어 시리즈화하는 추세가 강해지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하나의 시리즈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1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업계의 자발적인 참여로 한국커넥터산업협회가 출범했지만 아직 협회인증을 놓고 전자산업진흥회와 힘겨루기 상태에 있다. 정부는 기존 전자산업진흥회에 커넥터협의회가 존재하는 만큼 중복되는 기능을 수행하는 커넥터협회의 설립인가를 허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형 커넥터 업체와 중소형 업체간의 협업적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당초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에 머무르고 있다.

 커넥터협회는 대형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주를 획득하고 중소형 커넥터 업체들은 생산을 담당한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커넥터협회가 업체간 조율을 담당, 중복투자를 줄이고 공급과잉을 최대한 방지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신규 제품을 생산할 경우 업체간 상호 의견조율을 통해 서로의 특화된 영역을 존중, 일정한 규모의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상생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커넥터협회의 한 관계자는 “중소형 업체와 공조해 고기능 저가 제품을 생산, 시장을 공략하는 협업 시스템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진다”며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커넥터 업계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업계의 단가인하 경쟁, 매일 새롭게 변해가는 세트제품, 새로 시행되는 PL법으로 인한 배상우려, 관세문제 등 헤아릴 수 없는 복병들이 국내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커넥터는 휴대폰을 비롯한 디지털가전·컴퓨터·자동차 등 거의 모든 제품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정부 차원의 연구지원, 업계간 공조체제 구축 등이 절실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수출원으로 각광받는 휴대폰과 디지털가전기기 등을 비롯해 대다수의 제품에 다양한 커넥터가 사용되지만 거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수출을 통한 완벽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입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용되는 커넥터 등의 부품을 국산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지환기자 daeba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