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라고 할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양면성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 삶에 편리함을 주었다. 반면 환경공해라는 반갑잖은 짐도 함께 주었다. 생명공학은 어떤가. 불치의 병을 고쳐 인간이 장수를 누리게 했지만 생명복제라는 미증유의 난제를 제시했다. 인터넷도 그렇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할 때 얼마나 기대감이 컸는가. 정보의 바다를 누구나 헤엄칠 수 있다며 반겼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의 패턴을 바꾸는 데 일등 공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공을 초월해 각종 정보와 만날 수 있다. 오지 마을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의 소식을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인터넷 벌초에다 인터넷 세배하기, 명절 음식 맛보기, 차례상 차리기 등 다양한 정보와 만날 수 있다. 예전처럼 주눅 들어 시어머니에게서 음식만드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인터넷은 한국의 위상제고에도 한몫 했다. 지난 97년에 160만명에 불과하던 인터넷 이용인구가 지난해에는 2400만명을 넘어섰다. 전국에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조기에 구축해 세계최고의 인터넷강국으로 부상했다.
얼마나 고마운 인터넷인가.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던가. 인터넷이 차츰 어둠의 장난감으로 전락하면서 해악이 급증하고 있다. 이용자 대다수가 게임이나 채팅 등 오락에 치중하고 있다. 정보의 보고라는 인터넷에서 학술이나 학문을 검색하는 사람은 소수다. 반사회적 반인륜적 일탈 행동도 늘고 있다. 자살사이트, 무기제조사이트. 포르노사이트 등이 기승이다. 얼굴없는 언어폭력이나 e메일을 통한 무차별 테러도 문제다.
가장 심각한 일은 국어파괴 현상이다. 사이버상에서 문법을 무시한 단축어와 비속어가 판친다. 합성어, 조어, 소리나는 대로 쓰기 등이 난무한다.
‘펀버누(휴대폰 번호)’ ‘하꼬(학교)’ ‘럽하다(사랑하다)’ ‘비번(비밀번호)’ ‘설녀(서울 여자)’ ‘쇠욜(금요일)’ ‘할룽(안녕)’ ‘냉텅텅(내용없음)’ ‘마즐래(맞을래)’ 등 자그마치 2300개의 국적불명 언어가 사이버상에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언어가 상대와 대화를 보다 빠르게 그리고 어휘나 의미를 풍부하게 표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처럼 의사소통의 빠름이나 어휘의 풍부함 등을 이유로 이를 방치할 경우 자칫 국어를 파괴하고 청소년의 언어정체성에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세대간의 언어이질화는 걱정되는 일이다. 일부층은 부모자식간에 대화가 안된다고 한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다음 사회’에서 선진국이 될수록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다고 했다. 언어괴리가 해소되지 않으면 언어이질화는 앞으로 세대간 대화단절을 심화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보화의 양적인 팽창에 치중해온 게 사실이다. 그 결과 우리의 통신인프라는 세계 최고인데 이용수준은 낙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제 이같은 양적 팽창에서 벗어나 질적인 향상을 이룩해야 한다. 정부는 통신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국어문법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인터넷 윤리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미지수다. 최근에는 문광부가 ‘바른 통신언어 사용하기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이 일은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국어학계를 비롯한 모두가 올바른 통신언어를 사용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흔히 역사는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만든다고 한다. 시대 창조의 주역은 그때를 산 사람들이다. 지금 통신언어 오남용의 책임은 우리한테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도 우리몫이다. 쓰레기를 양산하면 자연이 오염되는 법이다.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란 뜻의 자랑스런 한글이 망가지는 것을 당신은 수수방관할 것인가. 이제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
< 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