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르는 `신의주 SM 밸리`>(하)성공 요건과 과제

 북한의 신의주 지역에 동북아시아의 최대 IT집적단지로 조성하려는 이른바 ‘신의주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밸리(약칭 신의주SM밸리)’ 조성계획은 북한당국의 신의주 특구 지정 이후 파격적인 후속조치로 인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0년 베이징·상하이 IT단지를 둘러본 뒤 신의주에 머물며 이 지역에 IT 중심의 단지를 만들라고 지시한 발언에서 보듯 신의주SM밸리의 현실화 가능성도 밝은 편이다. 신의주SM밸리는 이제 막 첫걸음을 떼고 청사진을 향한 대장정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넘어야 할 제도적·법적 걸림돌=대북 전략물자 반출제한 제도인 바세나르협정은 그 중 대표적인 장벽으로 꼽힌다. 미국은 컴퓨터 등 고민감 품목의 대북반출을 봉쇄하고 있는 이 협정을 들어 각종 전자통신 장비·기술의 대북반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협정 회원국인 남한의 기업들이 그동안 북측과 합의를 이끌어낸 많은 사업계획들은 바세나르협정 등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하거나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설립된 남북 첫 IT합작사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중국 단둥에 자리잡게 된 배경도 바로 이 협정 때문이다.

 바세나르협정 문제는 북미관계 개선과 직결돼 있다. 북한이 신의주 특구를 획기적으로 개방한다고 해도 미국과의 관계가 경직돼 있다면 남한기업이 진출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신의주내에 IT개발을 진행하기 위한 장비와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서는 협력사업의 활성화와 확대는 힘들 수밖에 없다.

 신의주 특구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차로 10분 내외의 거리에 있는 중국 단둥지역과의 차별화도 관건이다. 단둥은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인적 측면 등에서 신의주에 견줘 우위에 있다. 때문에 신의주 특구는 단둥보다 더 좋은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에서 남북 IT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 기업가는 “신의주 특구는 토지임대료·세금·인건비 등 제반 투자조건에서 중국의 단둥에 견줘 경쟁력이 높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인력을 향후 특구 개발방향과 걸맞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인가도 전문가들이 꼽는 과제다. IT분야는 특성상 고급인력의 확보가 중요하다. 즉 개발작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북한당국의 인력공급은 가장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IT인력의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특구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의주 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보장, 값싼 양질의 노동력 공급, 인프라 구축 등이 필요하다”며 “값싼 고급 노동력을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지 주목되며 인프라는 결국 중국과 남한, 서방 자본의 투입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도 어떻게 빨리 풀어가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이 화답할 차례=북한은 지난 12일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전격 지정한 이후 예상밖의 파격적인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다. 급기야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운영하는 행정장관으로 네덜란드계 화교인 양빈 어우야그룹 회장을 선임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특구 개발 방향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외부의 불안심리를 녹이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신의주 특구는 중국의 홍콩 특구와 선전 경제특구, 상하이 푸둥지구, 쑤저우 공업원구의 특장점을 살린 북한식 경제특구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신의주 특구 지정으로 북한이 취하고자 하는 방향은 어느 정도 뚜렷해졌다.

 따라서 남한으로서는 이러한 북측의 급속한 개방조처에 적극 대처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북의 개혁개방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의주 특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남측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와함께 신의주SM밸리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IT수준을 일정 부분 끌어올리려는 선행투자가 불가피할 수 있다. 신의주SM밸리 조성은 단순히 수익사업만이 아니라 ‘통일IT코리아’ 건설을 위한 민족 공동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의주 특구 바람에 휩쓸려 성급한 투자계획을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정치적인 사고에 매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IT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문광승 하나비즈 사장은 “남측의 기업들이 정치논리에 따라 대북 IT분야 투자와 참여를 계속 주저할 경우 화교자본이나 일본, 중국 등에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보수적인 관점에서 북측의 새로운 정책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면 큰 투자기회를 놓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은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아직도 신중함이 요구되지만 과거와 같은 유보적 입장의 신중함보다는 적극적 입장에서의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