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중독은 개인의 문제다. 국민이 감기에 걸렸다고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가.” “사이버중독은 이미 사회문제다. 정부의 체계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사이버중독을 둘러싼 정부의 책임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측은 사이버중독은 신IT문화의 역기능 중 하나로 개인의 의지 여부에 따라 발생하는 것으로 정부가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케이블TV, 무선이동통신단말기 등과 관련된 중독을 포함한 사이버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 해외 사례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사이버중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결자해지’의 원칙을 내민다. 사이버중독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현실에는 국가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해당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역기능을 무시한 채 순기능만을 강조하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인프라 구축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논리다.
◇정부의 대책마련 시급=올해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선우씨가 발표한 석사논문 ‘인터넷 중독 실태와 영향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10∼30대 인터넷 이용자 3명 중 1명꼴로 인터넷 중독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대상자의 30.7%가 인터넷에 중독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청소년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직장인과 주부, 노년층도 만만치 않다. 한국남성의전화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외도문제 상담건수를 재분석한 결과 인터넷 채팅으로 인한 외도는 반년 사이 250배가 증가됐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사이버 중독증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급격히 늘고 있다. 최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의하면 2000년 하반기 488건이었던 게임관련 사이버범죄가 올해 상반기에는 1만5740건으로 32.3배 폭증했으며 전체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6.3%에서 54%로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게임 이외의 원인도 들이댄다면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특히 2∼3년전에는 피의자가 단독으로 수십, 많아야 수백만원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 정도에 불과한 사건이었으나 지금은 조직적인 범죄로 발전해 피해액도 수천만원에 이르고 피해자도 광범위해졌다는 것이 사이버테러 대응센터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정보문화센터의 김정미 연구원은 “중독률이 30% 정도 넘어서는 상황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섰다”며 “법적 전염병이 아닌 감기도 환자가 많으면 정부가 ‘나 몰라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정부 책임론을 주장했다.
◇대안과 문제점=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로 예방시스템을 철저히 갖추는 데 주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꼽는다. 정부가 중독증을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의료복지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한 결과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민경배 소장은 “대부분의 질병이 그러하듯 사후처리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며 사이버중독증의 해결방안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정부에서는 사이버중독증 예방을 앞세우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국적이지 못하고 수도권에 국한됐다는 점과 대외홍보에 비해 사업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 문제다. 더더욱 내년에도 이러한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드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한국정보문화센터는 올해 4월부터 인터넷중독 예방상담센터를 열었으며 한국형 인터넷 중독척도 개발, 집단상담용 인터넷조절 프로그램 표준화 연구 등을 시행하고 있다. 사이버상담사 교육도 하고 있으며 학교로 직접 상담사도 파견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이나 다름 없다.
한국정보문화센터내 사이버중독예방을 위한 올해 예산은 약 2억원이다. 영상물 하나 만드는 비용밖에 안될 정도인 2억원을 갖고 여러 사업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참고로 정보문화센터의 국민정보화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은 100억원을 상회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교에 상담사를 파견하는 사업도 제대로 확산될 수 없다. 올해 30여개 학교에 상담사를 파견하게 되는데 이 중 10개는 정보문화센터의 예산으로, 나머지 20개는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다. 한 학교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100만원. 결국 예산이 늘지 않는다면 학교로 상담사를 파견하는 사업이 확산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결국 1년에 상담 혜택을 받는 학생은 많아야 150여명에 불과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욱이 대상 지역이 국한된 것도 문제다. 서울 경기지역으로 사업이 한정돼 있어 전국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상담인력 양성 역시 올해 3회 운영해 겨우 120명 교육을 실시한 것이 전부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내년 사이버중독 관련 예산이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마저도 사업을 벌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직까지 정부에서 사이버중독 폐해성을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례로 온라인상에서 사이버중독증 상담업무를 주로 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이버중독센터를 운영하는 인력은 단 1명이다. 그나마도 전담인력을 두기 시작한 것이 올해초부터다. 지금도 다른 업무를 병행하고 있어 새로운 기획이나 체계적인 운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정부는 신 IT문화의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처럼 게임산업의 육성만을 고민하며 주요 사용자인 청소년층에 대한 해악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점점 심각해질 것이란 얘기다.
호연심리상담센터의 이형초 대표는 “게임으로 인해 사이버중독증에 걸리는 청소년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인터넷 게임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등급제를 확실히 하는 등 청소년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정책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피해청소년지원센터의 임연정 간사도 “약 40%의 청소년들이 사이버 아이템이 재산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은 사이버중독 현상 개선을 위해 게임 문화양성만을 고집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보 부족도 큰 문제다. 사이버중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서울 YMCA 청소년 인터넷중독 예방상담실 송언희 상담원은 “관련기관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홍보와 교육의 부족으로 역부족인 상황”이라며 “지상파 방송 등을 통한 대외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회성에 그치는 사업보다는 영속성을 띤 사업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정보문화센터의 김정미 연구원은 “인터넷중독에 대한 연구나 상담기법이 전무한 상태란 점에서 콘텐츠 개발과 보급에 매우 신경써야 한다”며 “일회성 사업으로 실적 위주의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예산과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이버중독센터를 운영하는 김은성씨는 “사이버중독자를 치료하는 시설이 만들어져야 되며 지역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 지방에서도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인터뷰-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
“연구소도 없는데 중독센터를 여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세상에 사이버중독증이 뭔지도 모르는 정부가 무슨 중독센터를 운영하겠습니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사이버중독증 해결을 위한 정부의 방안’에 대해 묻자마자 대뜸 “정부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을 시작했다. 황 교수는 사이버중독센터의 예를 들며 연구원들은 전문성을 띠고 있지만 윗선의 사람들은 대부분 비전문가들인데다 낙하산식 공무원이란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사이버중독 해결을 위한 예산을 정부가 스스로 집행하지 말고 관련 시민단체나 학계가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사이버중독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속도로를 예로 들어보자. 고속도로를 만들었는데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홍보와 더불어 관련 법규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이버중독증 역시 마찬가지다. 초고속인터넷망 등의 설치를 장려했다면 이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다.
―지금 정부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보는가.
▲정부는 사이버중독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학계에서 어떻게 연구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지원정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보화 사업을 추진할 때 물리적인 측면의 수억원을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프라 구축시 전체 예산 중 10∼20% 정도를 향후 발생될지 모르는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으로 확보했어야 옳다. 정부가 만든 인터넷중독센터만 봐도 문제다. 예산과 인력의 부족도 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실무진이야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만 윗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이슈가 될 때마다 공무원 조직에서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예산을 스스로 집행하지 말고 학회나 업계에서 집행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통신회사나 게임회사의 수익금 중 일부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령을 만들고 이를 자금화해 지원하면 된다. 관료주의에 치우쳐 정부가 모든 것을 관여하려 하니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격이 되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구분해야 한다.
―사이버중독증의 해결방안을 연구하며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겪는 문제란 점이다. 최근 영국 세미나에서 사이버중독증에 관해 발표했는데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조차도 생소해 하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IT선진국이란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IT 문화를 갖고 있다면 향후 선진국으로 전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특히 채팅중독, 게임중독 등 점점 세분화되고 있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정부가 체계적인 연구활동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