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교 부설 한방병원 전문수련의인 한의사 윤모씨(28)는 지난해 9월 뉴포커닷컴이라는 외국계로 위장한 온라인 포커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실제 돈을 입금하고 벌이는 이른바 인터넷 하우스도박으로 한국에서 인기있는 7카드 방식이어서 익숙한데다 외국 사이트로 위장돼 있고 결제도 외국대행업체를 거치도록 돼있어 안전해 보였다. 2개의 ID를 등록한 윤씨는 실버와 골드 2개 방을 주로 드나들며 온라인 포커도박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병원 퇴근 후 PC방에서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퇴근하고 별로 할 일도 없고 또 워낙 포커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멤버를 잘만 만나면 크게 딸 수 있을 줄 알았죠.” 물론 어떨 땐 따기도 해 국제우편으로 수표를 배달받기도 했다. 하지만 따는 건 적고 잃는 건 많았다. 급기야 100달러로 시작된 포커 칩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 나중엔 하루에 4500달러어치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카드한도에 걸리자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으로 모자라 친구와 선후배 및 직장동료 카드까지 자그마치 8장을 돌려가며 쓴 포커머니가 3000여만원. 당시 그의 월급여는 170만∼180만원으로 이 돈을 갚기엔 역부족이었다.
“한번만 크게 따면 한꺼번에 갚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본전 생각에 그만할 수가 있어야지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는 급기야 은행에서 2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다. 겨우 카드금액을 막은 그는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조심스러웠던 그는 12월께 잠시 도박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그의 도박금단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임신한 부인이 처가로 몸조리를 간 사이 인터넷도박을 하기 위해 다시 PC방으로 향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하자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한번 크게 따면 빚도 갚고 포커머니도 벌 수 있을 테니까.” 포커머니를 벌기 위해 시작한 주식투자는 그에게 도박보다 더 심대한 피해를 끼쳤다. 주가급락으로 대출금 7000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고 그의 인생도 함께 쓰러졌다. 지난 7월 11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의해 적발된 사상최대(860억원 규모)의 해외사이버도박단 사건에서 윤씨는 고액의 상습도박자 27명 중 하나로 검거됐다.
이번 사건에서 검거된 상습도박자 중에는 벤처기업 사장 김모씨(43), 대기업 연구소장 서모씨(50),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오모씨(36), 현역 장교 김모씨(35), 카지노회사 딜러 이모씨(30), 다단계 판매원 김모씨(23), 무직의 심모씨(30), 종교도장 직원 강모씨(34) 등 화이트칼라 계층이 많은 분포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이 사이트에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한 1307명의 직업별 분포를 살펴보면 회사원 738명(51.0%), 자영업자 173명(12.0%), 금융업 종사자 80명(5.5%), 공무원 및 공기업 종사자 79명(9.5%), 교육기관 종사자 70명(3.9%), 의료기관 종사자 30명(3.3%), 무직 56명(14.2%), 기타 17명(0.7%)이다.
이들 모두 극심한 도박중독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암울한 미래가 엿보인다.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타인의 신용카드까지 마구 사용하는 무절제한 모습을 보였다. 다단계 판매원 김모씨의 경우 자신 명의 신용카드 5개를 포함해 총 19개의 신용카드로, 벤처기업 사장 김모씨는 회사 법인카드 3장으로 포커머니를 결제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도박단 검거를 진두지휘했던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양근원 경정은 “현실공간에서의 도박은 물리적·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사이버도박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고 현금이 아닌 신용거래이기 때문에 중독의 늪이 더 깊다”며 “도박성이 농후한 게임에 대해서조차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