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맥스가 지난주 업계 처음으로 위성방송용 셋톱박스 리콜을 선언, 이의 배경을 둘러싸고 숱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본지 9월 28일자 참조
◇IRCI는 어떤 제품인가=이번에 리콜을 선언한 IRCI는 네덜란드 방송 솔루션업체인 이레데토 CAS를 탑재한 셋톱박스 모델이다. 정확한 모델명은 ‘IRCI-5400Z’로 소매시장에서 휴맥스의 브랜드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제품이다. 휴맥스는 지난 2000년부터 소매시장을 중심으로 보급에 나섰으며 휴맥스의 브랜드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이 제품은 휴맥스가 독점하다시피 유럽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IRCI 모델은 그동안 어떤 제품보다도 해킹이 손쉽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소프트웨어 방식이 아닌 칩 방식으로 설계돼 온라인에 떠도는 패치파일 형태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손쉽게 해킹이 가능, 사업자를 비롯해 CAS 인증업체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일부에서는 IRCI 제품이 가격 질서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불법 해킹을 방조한다고 주장해 왔다.
◇휴맥스의 리콜 배경=휴맥스측은 먼저 이번 리콜이 결함이나 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단지 이번에 리콜을 선언한 것은 휴맥스의 앞으로의 사업방향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유럽 시장은 사업자와 소매시장으로 양분돼 있으며 사업자 시장 비중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매시장에서 제 아무리 휴맥스 제품이 잘 팔린다해도 성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휴맥스 입장에서는 해킹 의혹을 비롯해 각종 루머에 시달리고 있는 제품을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휴맥스 측은 “해킹으로 인해 정상제품의 유통이 점점 불안해지고 주요 CAS 업체가 해킹방지 노력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해킹의 타깃이 되는 IRCI 제품을 보완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며 리콜 배경을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방송사업자, CAS업체와의 관계를 위한 상징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전망=배경이야 어찌됐든 이번 리콜 조치는 그동안 구축한 세계적인 셋톱박스 전문업체라는 휴맥스의 위상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리콜에 따른 매출 감소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제품 결함에 따른 리콜이 아니라면 그 의미는 해킹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벌어진 바이액세스측과의 CAS 인증 취소건도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휴맥스는 그동안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 다른 CAS업체의 연쇄 소송을 우려했으며 이의 예방 차원에서 이번에 리콜을 선언했다는 분석이다. 휴맥스가 소매시장의 성수기를 앞두고 출혈을 감수하면서 이 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도 이런 복합적인 요인을 깔고 있는 셈이다.
휴맥스가 분기 매출 감소, CAS 인증 취소에 이어 이번에 벌어진 리콜 등 잇따른 악재를 딛고 셋톱박스 전문업체로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