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올들어 TFT LCD 시장이 본격적인 도약기로 진입하면서 한국과 대만의 주요 업체들이 최근 원천기술과 자체 특허를 무기로 불특정 다수의 경쟁사를 대상으로 포문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한 특허전쟁의 배경과 국내 업체들의 대응방안 등을 두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일본 TFT LCD 업계의 ‘자존심’으로 평가받는 샤프. 특히 중대형부문에서 다양한 원천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는 지난 8월 초 도쿄 지방법원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상대는 대만 유수의 디스플레이업체 중화영관(CPT)과 에이서. 샤프가 제기한 소장의 골자는 이들 대만업체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판매금지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다.
샤프 외에도 한때 세계 중대형 TFT LCD 시장을 선도하던 일본의 히타치·도시바·마쓰시타 등과 소형 LCD 부문의 최강자인 세이코엡슨 등도 약속이라도 한듯 한국과 대만업체들을 대상으로 무더기 소송을 준비중이다. 전문가들은 “LCD 기술은 원래 미국과 유럽이 원조지만, 일본이 상용화를 주도한 실질적인 ‘종주국’”이라며 “일본의 특허공세는 갈수록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않다. 이미 LG필립스가 지난달 초 미 연방법원에 대만 CPT와 다퉁 등에 대해 자사의 ‘사이드 마운팅(side mounting) 기술’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근에는 ‘액정수직배향(VA) 기술’의 서브 라이선스를 획득, 전세계에 특허권 행사를 천명, 파문이 일고 있다. LG측은 “앞으로도 자체 및 외부의 다양한 특허 라이선스를 근간으로 한 전방위 특허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경쟁사들의 특허전쟁을 예의주시하며 ‘정중동’의 상태. 그러나 LG가 VA 라이선스를 무기로 직접 겨냥하고 나서자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비록 ‘패턴수직배향(PVA)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원천적으로 VA 특허를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 삼성은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초대형 패널 기술 등 적지않은 원천기술을 확보, 향후 반격에 귀추가 주목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세계 TFT LCD 시장에 특허전쟁이 불붙기 시작한 근본 배경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는 올 하반기들어 TFT LCD 시장이 공급과잉(over supply)으로 전환되면서 선발업체들이 후발업체들을 견제,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원천기술과 고유특허를 무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특허소송을 제기, 후발 또는 경쟁사의 비지니스에 타격을 줌으로써 시장에서 반대급부를 노리겠다는 것. LG가 CPT를 상대로 한 특허소송을 최대시장인 미국 법원에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또 “첨단분야의 특허소송은 마케팅 수단과 함께 설비투자를 억제하는 효과가 커 선발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라고 강조한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라이선스 비지니스 전망이 밝아진 것도 특허전쟁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실제로 일부 일본업체들은 LCD 제조업보다 원천특허를 활용한 라이선스 수익에 더 주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천특허를 보유한 개인이나 연구개발(R&D)업체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조업체에 특허권을 판매, 앞으로는 특허 대리전 양상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