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정의 시네마테크>비밀

 일본영화 ‘비밀’(감독 다카타 요지로)은 제법 은밀하고 미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가? 더구나 그 다른 사람이 바로 자신의 딸이라면 그 사람은 아내인가, 딸인가? 상냥한 아내와 예쁜 딸이 있는 가장이 어느 날 난데없이 직면하게 된 이 문제는 이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이고 동시에 영화를 이끌어가는 긴장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직후 아내의 영혼은 딸의 몸속에 깃들이게 된다. 이른바 ‘빙의’라는 현상에 의해 딸의 몸과 아내의 영혼이 동거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혼란스럽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은 평범한 남편에게는 잔인한 형벌과도 같다. 더구나 내막을 구구절절 알릴 수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남편과 딸·아내는 비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비밀의 유지에 힘을 쏟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 남편의 심리를 따라간다. 딸의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내, 딸의 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하는 아내에 대한 질투와 소외감이 남편을 괴롭히고 아내를 안고 싶어도 딸의 모습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물론 이 영화는 일본영화 특유의 만화 캐릭터적 행위를 삽입하면서 무거운 이야기를 짐짓 가볍게 끌어가는 탓에 이를 지켜보는 과정이 고되지는 않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와 딸 중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의 문제는 가벼움과 경쾌함 속에서도 예리한 촉수를 언뜻언뜻 들이민다.

 영화에서의 해법은 의표를 찌른다. 그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현상적인 문제 사이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기 때문일까? 또는 영혼과 육체는 상호 대등하여 어느 쪽에 우위를 둘 수 없기 때문일까? 딸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남편의 선물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그친다면 이 영화는 남편의 희생적인 순애보로 그칠 테지만 여기에는 예의 반전이 있다.

 ‘비밀’은 빙의라는 소재가 지닌 팬태스틱한 측면, 그리고 이야기의 기발한 전개가 주는 재미가 있다. 아울러 존재의 자기증명과 정체성이라는 녹록지 않은 철학적 명제가 표상됨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반전에 의한, 익숙한 윤리관에 대한 비틀기는 아연 심상한 일상에 가하는 작은 충격이라 할 것이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