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업계 대만주의보 배경

 가입자망 장비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만업체의 성장세는 국내 네트워크장비업계에 상당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과 대만 모두 핵심기술력 부재로 인해 대형 백본급 장비보다 가입자망 장비에 주력해왔고 내수시장의 한계로 인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다는 점에서 대만업체의 성장세는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만의 경쟁력=자국 시장이 크지도 않고 시스코, 루슨트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하지도 않은 대만의 네트워크장비 산업이 활기를 띠는 이유는 정부와 업계간 공조체계 덕분이다.

 대만의 네트워크산업은 한두개의 대기업이 주도하기보다는 수십여개의 중소기업이 함께 힘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공동구매와 공동개발이다. 대만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히는 저렴한 가격은 핵심 부품의 공동구매에 기인한다. 수십여개의 기업이 핵심부품을 공동구매함으로써 구입가를 낮추고 이를 통해 확보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또한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 컨소시엄을 결성해 공동연구작업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ITRI(Industrial Tecnology Research Institute)나 III(Institutu for Information Industry) 등의 국책연구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업체간 이해대립으로 인한 불협화음을 미연에 방지했다.

 OEM사업도 대만 네트워크산업 성장의 원동력 중 하나다. 무선랜업체인 액톤의 경우 자사 제품은 물론 스리콤, 엔터라시스 등 미국 업체의 제품도 OEM 생산함으로써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액톤은 이러한 OEM사업 성공에 힘입어 미국 업체인 SMC를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업체의 대응방안=대만 업체는 가입자망 장비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국내 중소 벤처업체들에는 경계의 대상이다.

 최근 일본 VDSL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기산텔레콤의 손익준 해외영업담당 부장은 “VDSL의 경우 아직 대만 업체들이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이미 몇몇 업체들이 공격적인 가격전략을 통해 시장진입을 노리고 있다”며 “향후 대만업체가 양산체제를 갖춘다면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같은 대만 업체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결국 품질과 가격 두가지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공동 기술개발, 공동구매 등의 공조체제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통신사업자와의 공동사업도 대응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ADSL 및 VDSL사업에서는 통신사업자와의 동반진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향후 전망 및 걸림돌=대만 업체의 급성장에 대한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의 대책마련이 쉽지만은 않다는 게 사실이다. 공동개발 및 공동구매의 경우 이미 수년전부터 경쟁력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제시돼왔지만 업체간 이해대립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최근에도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네트워크산업경쟁력강화대책위원회가 발족됐지만 이를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원회 관계자는 “부품 공동구매를 위해 업체들을 상대로 부품도입처 및 도입가격을 조사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보노출을 이유로 협조하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통신사업자의 최저가 입찰도 걸림돌 중의 하나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국내 시장의 성공을 바탕으로 수출이 이뤄지는 게 상례지만 최저가 입찰로 인해 국내 시장의 가격파괴가 선행되다보니 업체들이 경쟁력을 다지기 힘든 상황이다. 일례로 포스트ADSL로 주목받고 있는 VDSL의 경우 시장이 활성화되기도 전에 가격대가 무너져 업체들이 해외진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 통신사업자에 VDSL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B사의 관계자는 “해외 통신사업자들이 국내 입찰가격 정보를 입수해 그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 네트워크산업경쟁력강화대책위원회의 이관수 위원장은 “대만업체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업체간에 공조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고 “업체 스스로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