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로 여는 출근길에서 색다른 자유를 만난다.’
출퇴근길 교통정체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이 되고 있는 요즘, 밀리는 차량들 사이를 교묘히 빠져나가며 교통대란에 저항하는(?) 두바퀴족이 늘고 있다. 이제 출근길 아침도로는 버스·택시·승용차 그리고 새로운 물류문화를 만들어가는 퀵서비스 오토바이와 함께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들로 달아오르고 있다.
다국적 IT업체인 컴퓨터어소시에이츠(CA)와 코오롱 그룹의 합작사인 라이거시스템즈의 김학진 팀장(36)은 매일 아침 출근길을 오토바이의 굉음과 함께 시작한다. 분당 집에서 삼성동 사무실까지 약 30분의 시간은 그만이 갖는 또 다른 세상이다.
3년째 오토바이 출근길에 오르고 있는 김 팀장은 “오토바이 위에서 맞는 전경과 스치는 바람, 엔진의 힘은 출근이라는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의 느낌을 준다”며 두바퀴 출근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가 오토바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내에 한문 선생님이 타고 온 소형 오토바이를 타본 감흥을 잊지 못했던 그는 미국 유학시절 플로리다 해변에서 열린 오토바이쇼에서 할리데이비슨·BMW·혼다 등 유명 오토바이를 시승하면서 지금까지 오토바이와의 인연을 지속해오고 있다.
현재 그의 애마(?)는 국산 기종 가운데 배기량이 가장 큰 250㏄의 아메리칸 스타일로, V트윈 엔진을 장착한 ‘미라쥬250’.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타고 다닌 것에 비해서는 작은 배기량이지만 출퇴근과 주말 레저용으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아싸125’라는 오토바이 동호회를 만들어 건전한 오토바이 레저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업대표·연구원·프로그래머 등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에 이르는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로 구성된 이 동호회는 오토바이가 주는 세상이야기로 가득하다.
“매일 출퇴근길에 만나는 승용차를 보면 1인 운전차가 대부분입니다. 아직까지 오토바이라면 폭주족이나 퀵서비스 아저씨를 떠올리고 있지만 건전한 오토바이 활용문화를 정착시킨다면 경제성이 높은 출퇴근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요.” 그는 오토바이에 관심을 갖는 초보자들이 먼저 오토바이가 차량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헬멧과 장갑 등 보호장구를 착용한 뒤 차선 중앙에서 일반 차량과 똑같이 방향 지시등을 작동하며 운행할 것을 당부했다.
e비즈니스솔루션 전문업체인 K4M의 박준호 연구원(32)은 2년째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가락동 집에서 대치동 사무실까지 운행시간은 약 40분으로 하루 1시간이 넘게 그의 두발은 자전거 페달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박 연구원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한 것은 하루가 달리 변해가는 몸매를 다잡기 위해서다. 꼬박 앉아서 프로그래밍 작업, 자료검색, 회의 참석 등으로 그의 하루는 가는 팔다리와 늘어나는 허리띠로 요약되는 전형적인 ‘개발자형 몸매’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침침해지는 시력과 스트레스, 근육통, 소화장애로 인한 위염 등 샐러리맨 특유의 증세까지 늘어나 뭔가 건강관리를 위한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년반 정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몸무게가 78㎏에서 10㎏ 정도 줄어들고 아침저녁으로 탁트인 시야를 가르며 페달을 밟는 동안 근육통과 소화장애 역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의 자전거 로드쇼는 사내의 성공 스토리로 알려져 ‘생활 속의 운동’에 대한 동료 직원의 관심을 자극했다. 최근에는 인라인스케이트로 출퇴근을 시도했던 두명의 동료 직원도 자전거 출퇴근길에 가세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근 탄천주차장에서 제기차기를 즐기는 직원이 늘면서 새로운 기업문화도 형성되고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많은 상상을 한다는 그는 “프로그래머는 단순히 코딩작업을 수행하는 ‘코더’가 아니라 상상력에 기반을 둔 프로그래밍으로 좋은 제품,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킥보드나 인라인 등 인기를 끌고 있는 레저 스포츠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