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은 철저한 프로정신을 갖춰야 우리나라 같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여성의 사회참여만을 부르짖지 않는다. 여성 자신부터의 변화를 우선 강조하는 이 여성에게 흔히 여성 경제인들에게서 엿보이는 강렬함은 찾아볼 수 없다. 가사일을 많이 했을 법한 큰 손으로 딤채 속의 김치를 꺼내 쑥덕 자르는 어머니 상이 그에게는 더 잘 어울릴 듯 싶다.
만도공조 백상태 부사장(53)은 우리 시대가 꼽는 소위 ‘성공여성’이다. ‘위니아에어컨’, 김치냉장고의 대명사격인 ‘딤채’를 통해 모그룹 부도(구 한라그룹)를 이겨낸 여걸로도 통한다.
만도공조는 만도기계 아산사업본부와 세계적인 금융기관인 스위스UBS캐피털컨소시엄이 만나 지난 99년 새로 설립한 회사. 당시 컨소시엄은 백 부사장의 오랜 미국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해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추천했다. 이후 그는 CFO로서 중장기적인 사업계획의 진행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자금을 집행·관리하는 안주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만도공조는 지난해에만 매출 8915억원, 순이익 630억원의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흔히들 기계업체라고 하면 남자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딤채를 만드는 회사에서 여자 부사장이 그리 이상할 이유가 없잖아요.”
여성이기 전에 프로를 강조하는 백 부사장은 이력에서도 전문성이 대번에 드러난다. 경기여고, 연세대 상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오하이오주 애크론대학에서 회계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92년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미국에서 기계업체, 회계법인, 컨설팅업체 등에서 활약했다.
재무통인 그가 CIO를 겸한 것은 지난해부터. 섬세한 일 추진력을 IT분야에서도 발휘해달라는 요구에 의해서다. “사실 저는 IT배경이 없는 사람입니다. 많이 배우고 시행착오도 겪고 있어요. 단지 딤채나 일반 에어컨 같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제품들의 경우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파악이 필요하다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IT에 관해서는 한껏 자세를 낮추는 백 부사장이지만 지난 2년 동안 구축한 e비즈니스 환경은 대단하다. 우선 2000년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도입해 디지털 경영의 기틀을 다졌다. 지난해에는 협력사들과 생산계획, 납기 등을 공유하는 ‘WAS’시스템을 완성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홈페이지를 사업부별로 전면 개편·통합하고 영업사원들에게 PDA를 부여해 모바일 영업환경을 구축했다. 공급망관리(SCM) 체제 도입을 위한 물류정보시스템도 지난달 가동시켰다.
“삼성, LG 같은 대형업체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들만큼의 정보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IT에 의한 정보통합과 업무환경 개선이 CIO로서의 제 과제입니다.”
매출 1조원을 눈앞에 둔 만도공조의 ‘디지털경영체제로의 변신’이 이제 그의 어깨에 달렸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