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기독교 문화권에서 로봇이란 참 미묘한 존재다.
본시 서양에서 영혼이란 것을 갖고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뿐이다. 다른 동물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신이 특별히 창조한 인간과 동등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하물며 기계로봇 따위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흉내를 내면서 기계도 자의식이 있다고 들먹이는 것은 엄밀한 기독교적 관점에서 따지자면 일종의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기독교 전통이 뿌리깊은 유럽인종들은 맨처음 로봇이란 개념을 고안하고 활용하면서도 자신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대해 끊임없이 종교적 죄의식을 느끼며 불안해 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서양의 많은 과학소설, 영화에선 인간이 자신과 유사한 존재를 창조하려는 행위는 반드시 파멸로 귀착되며 이것은 하늘이 내린 징벌이란 식으로 묘사된다.
결국 기독교의 입장에서 너무 똑똑한 인간형 로봇이란 인류에 잠재적인 위협이며 질투와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쉽다. 이런 문화적 배경 때문에 서구의 로봇과학자들은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 하드웨어를 만들기보다 로봇이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불안을 검증하기 위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연구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기독교적 원죄의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일본인들이 휴머노이드 개발에서 미국, 유럽을 앞서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기독교와 유사한 태생적 토양을 지닌 이슬람 문화권에선 인간형 로봇기술에 대한 반감이 한층 더 심하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신이 창조한 피조물인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을 흉내내는 것은 우상을 만드는 죄로 간주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극단적인 사례인 탈레반 정권은 전세계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1500년된 바미얀 석불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깨부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사람인척 하는 인간형 로봇이 어떤 존재로 비쳐질지는 뻔한 일이다. 더우기 미국의 이라크침공이 현실화되고 각종 로봇병기의 활약이 두드러질 경우 로봇기술에 대한 이슬람권의 정서적 반감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슬람국가에서 현대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마찰을 빚는 사례는 빈번하지만 그중에서도 첨단 로봇산업이 꽃피는 것은 문화적 토양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사회도 향후 첨단로봇이 생활 속에 보급되는 과정에서 각종 종교적 오해를 받아 특정회사의 지능형 로봇제품을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공장폐쇄를 요구하는 종교단체의 시위가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괜한 오해와 질시를 받는 인간형 로봇을 변호하기 위해 종교법정에서 미리 한마디 하고자 한다.
“로봇은 인간을 본떠서 만든 거울일 뿐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기계는 기계가 보는 세상이 따로 있기 때문에 로봇이 인간을 질투하고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은 온당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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