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사장 이기태

 삼성전자는 불과 몇년 전만해도 반도체 메이커의 대명사였다.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짓는 컨슈머 제품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TV는 얇아지고 해상도가 높아졌고 노트북PC는 무선의 컨셉트를 내세워 세계 최고 수준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무엇보다 최고급 이미지의 이동전화단말기는 삼성전자를 일본의 소니와 견줄 만한 아시아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냈다. 노키아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중·저가 시장을 대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동안 삼성전자는 콤팩트한 디자인과 한발 앞선 기술력으로 하이엔드 시장에 집중, 명품의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900만대의 이동전화단말기를 판매해 7.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노키아·모토로라·지멘스에 이어 4위 업체로 성장했다. 올해는 경쟁업체들이 적자로 허덕이는 와중에도 시장점유율을 10% 수준까지 높이며 세계 3위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세계 최강 노키아를 제외하곤 사실상 경쟁자가 없을 정도다. 이익면에선 노키아마저 앞서고 있다.

 애니콜 신화의 주역 이기태 사장(54)의 역할이 컸다. 그의 추진력과 완벽주의는 애니콜을 최고의 이동전화단말기로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비즈니스위크지는 이기태 사장의 공로를 인정해 그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CEO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 2년간 해외언론으로부터 받은 수상기록만 100여 차례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TV를 비롯해 여러가지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이동전화단말기만큼 삼성의 브랜드를 높인 제품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경쟁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소비자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제품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쌓아갔습니다. 시장점유율은 10% 정도지만 잠재능력은 노키아와 견줄 만합니다. 세계에서 삼성전자가 이동전화단말기를 제일 잘 만들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늘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90년대말 GSM 단말기를 들고 유럽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 유럽의 사업자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노키아·에릭슨·지멘스 등 쟁쟁한 GSM 단말기업체들이 유럽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데다 통신후발국에서 이제 겨우 CDMA 단말기를 만들기 시작한 삼성전자를 주목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삼성전자 이동전화단말사업부의 모 임원은 “지금이야 유럽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비유럽 단말기업체중 모토로라와 함께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지만 불과 3∼4년 전만해도 삼성이라는 회사조차 모르는 사업자들이 태반이었다”며 “유럽의 사업자와 약속하고 찾아가도 담당 부서장은커녕 실무자조차 만나주질 않아 속을 태웠다”고 회상했다.

 이때 이기태 사장 특유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해외 바이어들과 수출상담 자리에서 단말기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발로 밟아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국제기준보다 훨씬 강력한 기준을 적용해 제품력을 자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무엇보다 삼성전자 단말기의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추진력 덕분에 그는 ‘불도저’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달성될 때까지 앞뒤를 가리지 않는 그의 경영스타일을 잘 대변한 듯 싶다. “불도저란 별명이 맘에 드냐”고 묻자 “인텔리전스 불도저로 불러달라”고 했다. “불도저지만 깜박이가 있어 방향도 전환하고 브레이크가 있어 설 때는 설 줄도 아는 인테리전스 불도저”라는 것이다.

 그는 기술 신봉론자다.

 “디지털은 새로운 기술의 패러다임입니다. 연구만 잘하면 상상을 뛰어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TV폰이나 와치폰 등 신개념의 단말기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획하고 만들어냈습니다. 기술의 혁신만이 살 길입니다.”

 이 사장은 산업현장에서 뼈가 굵은 CEO다. 그는 대전 보문고등학교와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2년간 군에 다녀왔다. ROTC시절 대전에 있는 육군통신학교에서 무선 교관을 하면서 무선통신에 일찍 눈을 떴다.

 그는 74년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그의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당시 삼성이 일본의 산요와 합작해 만든 삼성·산요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는 이 회사의 라디오과에 발령을 받았다. 한국어로 번역된 라디오 관련 서적조차 없었던 당시 이 사장은 일본어 공부까지 해가면서 지식을 쌓은 다음 현장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조립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사장은 입사 1년만에 라디오 부문의 생산관리 책임자로 승진한다. 그는 그후 설계 파트를 거쳐 제조기술과장(78년)으로 한단계 진급했다. 그 사이 삼성전자와 삼성·산요가 통합돼 삼성전자가 됐다. 삼성전자가 품질관리를 경영모토로 삼았던 83년 음향품질관리실장을 거쳐 85년 비디오생산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89년 정보통신 사업담당 이사로 맡으면서 이동전화단말기와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그는 무선사업부 이사(92년)→부장 상무이사(96년)→부장 전무이사(98년)→부장 부사장(99년)을 거쳐 지난 2001년 정보통신총괄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거의 1년에 한단계씩 뛰는 초고속 승진으로 회사 내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이동전화단말기 생산력을 자랑한다. 일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이 사장은 시간만 나면 구미공장에 내려가 직접 신제품을 만져보고 문제점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그만큼 현장경영을 중시한다.

 “삼성전자는 이동전화단말기 개발에 매년 3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며 2000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동통신부문의 45% 정도가 이동전화단말기 연구인력입니다. 3세대는 2세대와 또다른 경쟁입니다. 제품이든 기술이든 한번만 실수하면 회복불능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통신환경이 복잡해지면서 경쟁업체들간에도 협력을 해야하는 시대입니다. 10년 앞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다행히도 제 눈에는 이동전화단말기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보입니다. 통신하는 방법과 모양은 크게 바뀔 것입니다. 휴대폰이 지금처럼 커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개념도 무의미해질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이런 시대를 대비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IMTs라는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아직까지 확실한 주도세력이 없는 차세대 단말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경쟁사인 노키아와도 협력관계를 체결했다. 4억대를 정점으로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는 이동전화단말기 시장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양사가 손잡은 것이다.

 이에 앞서 오라클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스마트폰을 앞세워 기업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제는 세계적인 IT업체들이 먼저 찾아와 시간을 내달라고 합니다. 삼성전자의 이동전화단말기와 협력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거죠. 해외출장 때마다 IT업체의 CEO들을 만나는 게 중요한 업무중 하나가 돼 버릴 정도입니다. 삼성전자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죠.”

 이 사장은 가족들마저 애니콜 개발에 이용(?)한다. 지난 73년에 고복숙(51)씨와 결혼해 세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집으로 가져와 가족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기능, 디자인, 음질 등 다양한 테스트를 하게 한다. 그가 놓칠 수도 있는 부분을 가족들이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 게재용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는 단말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벌써 두시간째 삼성전자 이동전화단말기를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도 모자란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휴대폰에 대한 그의 열정이 하나 가득 느껴졌다.

△48년 10월 출생 △67년 보문고등학교 졸업 △71년 인하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73년 삼성전자 입사 △94년 삼성전자 무선(DATA)부문 이사 △96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업부장 상무 △2000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대표이사 부사장 △2001년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 △2002년 삼성전자 텔레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총괄 사장, 휴대폰 산업협의회 회장, 한국광산업진흥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중국위원회 부위원장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