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선 국제부 차장
“내년에는 미국 등 전세계 정보기술(IT) 관련 경기가 올해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
“국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코스닥이 연일 바닥을 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벤처기업에 투자할 엄두도 못낸다.”
최근 삼성동에 있는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모 벤처캐피털사가 투자한 10여개 IT기업 사장들과 내년 사업계획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오간 말이다.
2000년 하반기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IT불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전세계에 확산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90년대 전세계 IT산업을 이끌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느끼는 불황은 더욱 심각하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발행되는 머큐리뉴스는 “이곳의 IT 경영자들은 한때 ‘신경제’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으나 최근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을 견디지 못해 아예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연말을 앞두고 전세계 IT 관련 기업들이 느끼는 불황에 대한 불안감은 최고조에 도달한 느낌이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 불황이 오래 계속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특히 IT분야가 90년대 이후 약 10년 동안 매년 시장규모가 20∼30%씩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IT불황도 장마철에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소나기’ 정도로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후 IT불황이 확산되면서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자포자기하는 사람까지 늘어나고 있다.
IT컨설팅회사인 가트너는 최근 전세계 IT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느끼는 심리상태를 “평소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질 때 발생하는 일종의 ‘공황(panic)’과 같은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폭풍우 때문에 잠시 포구에 피신한 배가 계속 출항이 연기될 때 어부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허탈감’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때는 경제 불황(폭풍우) 자체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경영자들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위기 뒤에 숨어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유능한 경영자의 제1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전세계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IT경영자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먼저 영국 부동산 재벌인 리처드 브랜슨 회장(52)이 운영하는 버진모바일이 지난 7월부터 미국 이동통신서비스업체 스프린트PCS의 통신망을 빌려 휴대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홍콩 최대 재벌 허치슨왐포아를 이끌고 있는 리자청 회장(71)의 청사진은 더욱 야심만만하다. 그는 최근 영국의 통신 자회사 허치슨3G를 통해 이달 중 유럽 최초로 영국에서 제3세대(G) 서비스를 선보이고 그 여세를 몰아 오는 2003년까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스웨덴·덴마크 등 유럽 주요 국가를 연결하는 3G 이통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 관련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명의 경영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전하라’ ‘꿈은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