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직장인 구보씨의 하루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한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구보씨는 문득 침실공기가 탁하지 않고 쾌적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쌀쌀한 새벽날씨 때문에 어젯밤 방문을 꼭 닫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방마다 뚫린 강제식 환기구를 통해 신선한 외부공기가 밤새도록 실내에 공급된 것이다. 머리 속이 한결 맑아진 느낌이다. 구보씨는 가뿐하게 일어나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잠을 자면서 산소부족에 시달리지 않은 탓인지 몸의 컨디션도 매우 좋다.
자가용을 몰고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 혼잡한 도로구간에 들어서자 차량내 공조장치가 배기가스농도를 감지하고 오염된 외부공기 유입을 자동으로 차단한다. 자동차 실내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차량용 공기정화장치 AQS(Air Quality System)가 작동한 것이다.
구보씨가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니 상쾌한 향기가 가득하다. 승강기 천장에서 사람의 두뇌활동을 촉진한다는 기능성 공기 ‘금강산 솔향기’가 뿜어나오고 있다.
구보씨는 책상에 가방을 던져놓고 복도 한구석으로 나가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었다. 빌딩내 전구역이 금연인데도 많은 직원이 삼삼오오 담배를 피고 있다. 회사측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원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층마다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디스모커(흡연용 공기정화기)를 설치한 덕분에 흡연을 해도 실내공기가 거의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비상계단이나 옥상에서 초라하게 담배를 피우던 골초직장인들도 회사생활하기가 한결 나아졌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사무실로 돌아온 구보씨는 열교환식 환풍장치의 스위치를 최대로 올렸다. 사원들의 식곤증을 예방하려면 실내에 신선한 공기를 가능한 많이 공급해야 한다. 실내온기를 유지하면서 외부공기만 빨아들이는 열교환식 환풍장치가 사무실에 설치된 탓인지 오후시간에 조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구보씨는 거래처 손님과 약속장소로 잡은 회사 인근의 ‘산소방’으로 향했다. 요즘 성업중인 산소방은 손님에게 커피와 일회용 산소통을 함께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커피체인점이다. 거래처와 상담을 마친 구보씨는 반쯤 남은 산소통을 코로 들이키며 생각했다. ‘공기도 돈주고 사서 마시다니 옛날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퇴근 후 구보씨는 모처럼 입사동기들과 어울려 노래방으로 발길을 향했다. 예전에는 노래방에서 한두곡만 불러도 목이 따가웠는데 왠일인지 오늘은 한시간 넘게 열창을 해도 목소리가 괜찮다. 얼마전 정부에서 노래방업소의 환기시설을 의무화한 이후 그 탁하던 지하노래방의 실내공기도 확실히 깨끗해졌다.
집에 돌아온 구보씨에게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낮에 우리애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교실마다 값비싼 공기정화기를 설치할 계획인데 학부형들이 좀 도와달래요. 그거 달면 아이들 성적도 오르고 좋다던데….”
구보씨는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잠시 생각한 후 아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깨끗한 공기도 공짜가 아닌 세상이다. 우리 아이도 이 도시에서 마음껏 숨쉬도록 해줘야 옳지 않겠나.’ 구보씨는 차가운 밤공기를 다시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국내 IAQ 시장동향
실내공기 정화와 관련한 국내시장은 크게 건축물에 고정되는 설비시장과 가전 개념의 공기청정기류로 크게 양분된다. 공기청정기·오존발생기 등 환경관련 가전제품은 건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평균 30%대의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중이다.
가전용 공기청정기는 특히 에너지절약형 실내구조의 확산으로 실내공기 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수요가 급증해 백색가전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상황이다. 내수규모는 지난해 450억원에서 올해 600억원대, 내년에는 1000억원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공기청정기시장은 청풍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웅진코웨이, 청호나이스를 비롯해 삼정인버터, 쿠쿠홈시스, 스타리온과 같은 생활가전 전문업체가 시장추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건축물에 영구설치되는 공기정화 설비의 경우 실질적인 내수시장이 형성된 지는 불과 3∼4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중 열교환식 환기장치(리쿠퍼레이터)는 새로 부상하는 건물용 공기정화설비시장의 대표격이다. 리쿠퍼레이터는 사무실 벽에 흔히 설치되는 통풍팬이 아니라 여름이나 겨울철에 건물 내부의 냉난방 온도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신선한 외부공기만 끌어들이는 에너지절약형 환기시스템이다. 선진국에선 보편화된 리쿠퍼레이터는 최근 자연환기가 불가능한 30층 이상 초고층 주상복합빌딩과 고급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시장형성이 시작된 상황이다.
스터링테크놀로지코리아와 에이스랩, 미쓰비시, 내쇼날, 알덱스 등 전문업체들은 주상복합빌딩 특수로 올들어 평균 4∼5배씩 매출이 늘어나 리쿠퍼레이터 내수시장 규모는 올해 2만대, 800억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특히 신축 아파트와 종합병원·실내주차장·도서관 등 지상 실내공간의 공기오염도를 엄격히 규제하는 ‘실내공기질관리법’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어 관련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교육부가 교실내 환기, 온습도, 먼지 잔량에 대한 환경위생기준을 대폭 강화함에 따라 전국 초·중·고교 25만여 학급에 연간 1000억원대의 공조설비(에어컨, 열회수환기장치) 특수가 신규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장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금연바람이 거세지면서 끽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하기 위한 담배연기제거시스템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옥상과 비상복도, 화장실로 내몰리는 흡연자들을 위해 실내 특정구역의 담배연기를 빨아들여 청정한 공기로 만드는 담배연기제거시스템 도입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각종 공공시설과 빌딩내 흡연구역에 필수적인 담배연기제거시스템시장을 두고 토넥스코리아, 에이스랩 등이 시장을 이끄는 가운데 업계의 시장점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올봄 짙은 황사를 계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는 공기정화기가 병원, 백화점 등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일반 주택가에도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이같은 시장확대에 따라 열교환필터, 집진필터류의 국산화노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IAQ업계에서 가장 주목할 현상은 대기업들이 잇따라 실내공기청정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LG전자가 건물 전체에 냉난방은 물론 공기청정과 환기기능까지 제공하는 시스템에어컨사업을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동안 중소기업들의 놀이터였던 IAQ분야가 내로라하는 대기업도 군침을 흘리는 황금시장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음을 반증한다. LG전자는 오는 2005년에 시스템에어컨시장 수요가 연 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센추리 등도 건물 전체의 실내공기질을 관리하는 시스템에어컨사업에 곧 뛰어들 태세다. 이처럼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대형 가전업체가 시스템 차원의 IAQ솔루션을 건물에 시공해주는 것은 이웃 일본에서는 20년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결국 한국도 대기업이 주도하는 IAQ시장이 형성됨에 따라 공기정화기술의 대중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배일한기자>
*기고:실내공기환경의 중요성과 산업적 가치(한양대학교 환경 및 산업의학연구소 김윤식 교수)
현대인이 사는 대기환경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및 교통량 증가로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공해로 인한 대기오염의 심각성은 인식하면서도 실내공기질(IAQ:Indoor Air Quality)의 오염문제에는 둔감한 실정이다. 하루 24시간 중 85% 이상을 가정과 자동차내, 사무실 및 작업장, 상가, 병원 등 실내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실외공기보다 실내공기의 오염정도가 건강유지에 심각한 위협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70년대 이후 각종 산업분야에서 에너지 절감 및 효율을 높이기 위해 건물내부를 밀폐화하고 에너지절감장치를 설치하면서 실내공기는 더욱 악화되는 추세다.
요즘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초고층 아파트와 사무용 건물, 초대형 지하공간은 대부분 자연환기가 불가능한 구조며 거주자들의 건강을 위해 실내공기질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공조기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실내공기오염에 대한 법률적 기준이 시급히 정비돼야 한다. 무엇보다 환경부·보건복지부 등 여러 정부부처간에 흩어진 실내공기에 관련된 법률을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지 법률적 규제만으로 실내공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내공간의 공기질을 높이는 문제는 대중적 관심과 산업계의 노력도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기오염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역사는 매우 짧다. 그나마 대부분의 사회적 관심은 차량배기가스나 공장연기 등 실외공기오염에 집중될 뿐 다수인이 이용하는 지하생활공간 및 가정내의 공기질을 높이는 문제에는 무관심한 편이었다. 80년대 이후 국내에서 반도체산업이 성장하면서 클린룸을 위시한 공업용 공기정화기술은 많이 성장했지만 일반가정이나 사무실의 환기시설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신선한 공기가 생활의 질을 높이는 기초 환경인프라에 속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확산돼야 한다. 미국, 캐나다, 유럽 북구에서는 웬만한 공공건물에는 빠짐없이 완벽한 환기시설이 설치돼 있고 맑은 실내공기를 위한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는 실내공기질을 법률적인 규제 때문이 아니라 선진국의 시민들 스스로 실내공기에 대한 자율적인 관심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최초의 공기청정분야 전시회인 국제클린테어텍 행사가 열린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도 경제발전에 따라 의식주에서 괄목할 발전을 이뤘다. 이제 사람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데 신선한 공기도 중요한 요소며 공기청정 비즈니스가 매우 수익성있는 환경산업이란 인식이 대중화되는데 이번 전시회가 기폭제가 됐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