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전자상가의 대명사는 용산전자상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상가는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로 이미 동양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전자 전문상가로 손꼽힌다.
과거 일본 전자산업의 출발과 성장이 우리나라보다 30년 이상 앞서 있었기에 대표적인 전자상가의 생성과 성장, 규모면에서도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과 일본의 전자산업의 격차가 크게 좁혀지고 디지털 가전 분야는 기업별로 세계 일류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가전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자랑하는 최대 규모의 전자 전문상가인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와 용산 전자상가의 비교를 통해 세계 최고의 전자상가의 모습을 살펴본다.
◇세계적 전자상가의 조건=각종 전자 제품을 한곳에서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대규모 전자상가는 여러 전문 시장 중에서도 가장 첨단화, 대중화된 시장이며 내수는 물론 해외 관광객 유치와 상품 홍보의 전시장 역할을 한다. 하나의 국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상가는 흔치 않다. 국토가 넓지 않아 고객 집객력이 우수하고 국가의 인구밀도와 유동인구가 많아야 한다. 특히 해당 국가의 전자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이거나 집중적으로 육성되는 분야여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이런 면에서 아키하바라와 용산전자상가는 중국의 중관춘, 홍콩의 몽콕전자단지 등 세계 시장에 익숙하게 알려진 전자상가들보다 우수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아키하바라는 일본 에도시대 하급무사들의 거주지로부터 출발해 초기 가전제품의 암시장을 거쳐 현재 소니와 파나소닉, NEC 등 일본 기업은 물론 다국적 기업들의 AV 및 정보가전 제품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국적 거리로 성장했다. 현재 전자 양판점 등 대형 점포 60여개와 중형 매장 300여개에 3000여개의 소매장이 성업중이다.
용산전자상가는 60∼70년대에서 80년대 초반까지 국내 대표적 전자상가인 세운상가가 87년 정부의 도시계획정책에 의해 용산으로 이전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처음 나진상가가 용산으로 이전된 후 원효상가, 선인상가, 터미널상가 등으로 확대되면서 몇 년새 대형 집단상가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용산구 한강로와 원효로를 중심으로 나진상가, 원효상가, 선인상가, 터미널상가, 전자랜드 구관·신관·별관, 전자타운 등의 상가와 한강 오피스텔 등 사무실 빌딩 주변으로 상가가 형성돼 있고 식당가와 사무실을 포함, 6000여개의 상가가 형성돼 있다.
◇아키하바라의 경쟁력과 용산상가=오랜 세월 일본이 전자왕국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아 온 것처럼 아키하바라 역시 ‘디지털 시대의 첨단거리’라는 명성을 여전히 유지할 만큼 활기가 넘쳐난다.
연매출 2조엔에 육박하는 아키하바라의 경쟁력은 전세계 정보통신 및 가전제품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신기술의 경연장이라는 점과 ‘아키하바라 가격’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것처럼 저렴한 가격과 고객을 우선하는 서비스로 요약할 수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최전선으로 성장한 아키하바라는 제품의 종류와 모델들이 아주 다양하다는 것 외에도 보고,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장을 통해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 저렴한 제품의 구매를 희망하는 중고등학생과 대학 초년생, 신혼부부는 물론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특히 아키하바라에는 라옥스 등 대형 면세점들이 들어서 있어 공항 면세점이 아니라도 외국인들이 면세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전국에 형성돼 있는 20여개의 전자단지를 잇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용산전자상가는 국내 PC 및 주변기기 유통 물량의 60% 이상을 소화하고 있으며 대만, 중국 등의 값싼 부품들을 국내에 반입하는 교두보이기도 하다. 상가내 업체들은 유통뿐 아니라 제조업, 기술개발까지 사업 영역으로 포괄하고 있으며 국산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국내 내수 유통에 주력하는 업체들이 용산근처로 터전을 옮길 만큼 물류와 배송, 정보 교환이 빠른 곳이기도 하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PDA, TFT LCD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IT제품을 개발, 제조하는 기업까지 일단 용산전자상가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유통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할 정도로 용산은 최첨단 기술의 흐름을 빨리 읽어내기에 적합한 시장이다.
◇세계 최고의 상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아키하바라내 컴퓨터와 정보기기를 판매하는 라옥스를 비롯, 이시마루덴키, 사토무센, 사쿠라야 등 대형 양판점들은 유통노하우, 브랜드력, 자금력 등의 우위를 바탕으로 높은 집객률을 자랑한다.
실제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 내에서 판매중인 디지털카메라 가격은 국내에 비해 최소 5만원 이상 저렴하게 팔리고 있으며 약간의 발품을 파는 노력을 통해 일반 소형가전에서부터 첨단 디지털 네크워크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첨단제품과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점도 유명세의 한 요인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이 상점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한국, 중국 등 저임금을 활용한 후발국들의 추격이 거세고 애프터서비스 등 관리비용도 많이 들어가 첨단 디지털 제품군이 전면에 포진돼 있다.
일본 경제의 장기적인 침체로 인해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지만 최근 몇 년새 일본에 일고 있는 축구붐을 타고 PDP TV 등 첨단 디지털 영상가전의 수요가 크게 일면서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다.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의 연합체인 아키하바라 전기진흥회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전문상가 개설 등 고객만족서비스 향상 노력과 함께 매주 최신 정보의 타운가이드를 배포하면서 음식점, 주차장, 교통시설, 은행현금자동지급기 코너 및 이벤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알차고 유익한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최신 인기상품 베스트 10 리스트’를 고객들에게 e메일로 발송, 고객들이 발품을 적게 팔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즐거운 거리’라는 20세기의 명성을 21세기에도 이어가기 위해 지속적인 체질개선을 단행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 디지털방송과 가정용 홈 서버의 보급에 의한 텔레비전의 혁명 및 홈네트워크 가전의 등장이 향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에는 안전하고 쾌적한 아키하바라 조성을 위해 노상금연 지역으로 선포하는 조례를 선포하고 시행에 들어갔으며 매주 일요일은 차없는 거리로 선포, 고객들이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소비공간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낮과 밤에 상관없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키하바라와 달리 하루 유동인구만 10만명 이상인 용산전자상가는 문화라고 일컬을 만한 것과 휴식공간이나 오락시설 등 위락시설이 매우 부족하다. 상가 규모와 매장수 등에서 일본 아키하바라를 능가하고 있지만 쇼핑 문화공간으로서, 첨단 유통공간으로서의 경쟁력은 미약하다.
아키하바라나 홍콩의 몽콕 전자단지의 경우 낮쇼핑은 물론, 밤쇼핑 시간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여러 가지 먹거리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는 다양한 이벤트가 쇼핑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용산전자상가가 세계 최고의 상가로서 아키하바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상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용산전자상가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첨단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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