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카]IT와 자동차의 만남(2)

 

 <카내비게이션시스템>

 대전에 사는 K씨는 최근 서울지역에 확보한 신규 거래처로 차를 몰았다. 서울 지리에 익숙지 않지만 목적지까지 운전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운전석에 설치된 최신 DVD 카내비게이션을 통해 거래처 회사명을 음성으로 입력한다. 잠시 뒤 액정화면에 여의도 63빌딩이 3차원 입체영상으로 뜨고 거래처가 있는 27층 △△호에 정확히 화살표가 맞춰진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카내비게이션은 63빌딩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상세히 안내해준다. 또 액정화면에는 서울로 오느라 자동차에 기름이 다 떨어진 상황이 경고되고 가장 가까운 주유소 두 곳의 위치까지 나타난다. 지도상의 좌표만 가르쳐주던 과거의 카내비게이션과는 차원이 다른 제품이다.

 카내비게이션시스템(Car Navigation System)이란 위성 GPS신호를 이용해 도로상의 차량위치와 운전자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전경로를 찾아주는 차량항법장치를 총칭하는 말로 그동안 차량용 정보기기의 대표주자로 군림해왔다. 지난 81년 일본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히 발전해온 카내비게이션은 90년대들어 CD롬에 전자지도를 내장한 제품기능이 안정화됨에 따라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중에서 일본 카내비게이션 보급댓수는 총 1000만대를 넘어 세계 수요의 65%를 차지하는 선두국가로 부상했다.

 현재 카내비게이션은 기술면에서 최단거리 계산, 특정위치정보(POI), 서비스탐색, 음성인식, 휴대폰접속 등이 실용화되면서 차량정보화의 핵심 허브로서 다기능화되는 추세다.

 한국의 경우 90년대 중반부터 고급차량의 옵션사양으로 시장형성이 시작됐으며 최근 3년동안 연간 100%가 넘는 급성장세를 지속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에 돌입하고 있다. 현재 국내 승용차시장에서 카내비게이션시스템 보급률은 2%선에 근접하고 지난 9월까지 누적보급대수는 15만대, 올해 내수시장규모는 8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편 CD롬 전자지도에 기반한 전통적인 카네비게이션시스템은최근 음성인식기술, 휴대폰 접속기능, DVD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이용한 거대저장기술이 접목되면서 비약적인 기술적 도약기를 맞고 있다.

 미래 카내비게이션시스템은 운전자에 대한 교통정보의 공급경로가 다원화됨에 따라 차량항법 자체보다 다양한 생활편의용 정보제공기능이 더욱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진보할 전망이다. 이처럼 방대한 생활편의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현재 지도정보를 저장하는 CD롬 한장(최대 680MB) 용량을 넘어서는 차세대 데이터저장기술이 필수적이다. 국내서도 DVD(최대 8Gb)와 하드디스크(20∼40Gb)를 이용한 차세대 카네비게이션시스템 제품이 내년부터 등장할 전망이다.

 시장선두업체인 현대오토넷은 2003년 9월 에쿠스 후속모델인 최고급 승용차에 국내최초로 DVD기반의 카네비게이션시스템 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기존 제품은 폭 5.2m이상의 자동차용 도로정보만 들어가는데 비해 차세대 DVD 카내비게이션은 도로주변의 지형지물을 3차원 그래픽 환경(그림3 참조)으로 구현될 뿐만 아니라 비좁은 골목길까지 표현한다. 어지간한 빌딩의 외부 모습까지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에 가는 길을 헤맬 염려가 없다. 유사한 시기에 등장할 하드디스크 기반 제품은 무려 20GB 기억용량을 지원하는데 위성사진과 실제 도로변에서 촬영한 건물사진을 접목시켜 완벽한 의미의 3차원 가상 시뮬레이션주행이 가능해진다.(그림4 참조) 이 하드디스크 기반 CNS제품은 오는 2004년에는 40Gb급으로 기억용량이 높아질 전망이다.

 또 특정위치정보의 경우 기존 CD롬 기반 전자지도는 약 30만에 불과하지만 DVD기반 전자지도는 무려 450만개의 정보를 내장하기 때문에 국내 거의 모든 상호명과 위치정보, 전화번호가 카네비게이션시스템 하나로 연계하게 된다.

 ◇카내비게이션과 텔레매틱스의 차이점=카내비게이션은 차량이 위치한 지역의 전자지도를 자체 CD롬을 통해 외부와 교신이 없어도 독자적으로 목적지까지 도로를 찾는다. 반면 텔레매틱스 단말기는 위치정보 파악을 전적으로 휴대폰 통신망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카내비게이션의 항법정보는 현재 독자적인 실시간 교통상황이 지원되지 않는 단점을 갖고 있지만 최근 무선통신기술, FM부가방송(DARC)기능을 수용한 카내비게이션이 잇따라 등장함에 따라 텔레매틱스 단말기와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는 추세다.

 한편 카내비게이션의 대중화추세와 함께 전자지도 CD롬을 생략한 보급형 카내비게이션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최근 대중적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독자 CD롬 전자지도를 플래시메모리로 대체하거나 액정화면상의 전자지도를 음성지시로 대폭 간소화시킨 보급형 제품은 값비싼 카네비게이션 제품과 무선통신기반의 텔레매틱스 단말기 사이의 니치마켓을 성공적으로 공략 중이다. 현재 스페이스원, 인포로드 등이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단속카메라 위치를 경고해준다는 소문으로 올들어 판매량이 급증한 GPS기반 카메라경보기도 머지않아 초보적인 항법기능이 추가돼 유사 CNS시장군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텔레매틱스>

 혼잡한 출퇴근 시간. 운전대를 잡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어떤 길로 가야 가장 빠르지.” 변덕스런 대도시 교통상황에선 아는 길이라도 적절히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텔레매틱스 단말기를 누르고 현상황에서 최적경로를 문의한다. ‘전방 150m에서 우회전하십시요.’ 실시간 교통상황을 반영한 음성정보가 들려온다. 운행도중 근방의 주유소, 식당, 호텔정보도 버튼 하나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자동차와 외부세상을 양방향으로 연결하는 정보채널이 텔레매틱스 서비스인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초기에는 달리고 멈추는 주행능력이 핵심경쟁력이었다. 자동차의 달리기성능이 평준화되면서 점차 환경, 안전관련 기능으로 자동차업계의 경쟁의 축이 옮겨갔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운전자에 대한 인포메이션 제공능력이 자동차성능의 핵심적인 경쟁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인이 차량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운전 도중에 필요한 정보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운전자에게 실시간교통정보와 기타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텔레매틱스서비스는 지난 수년간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핵심역량이자 황금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 텔레매틱스는 자동차제조, 판매 이후의 정비, 중고차 등 각종 하위 비즈니스에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국내서도 SK를 선두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르노삼성, 삼성화재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텔레매틱스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한국이 전국을 커버하는 이동통신망, 유무선 인터넷의 높은 보급률, 협소한 국토 여건과 복잡한 도로환경 때문에 실시간 교통정보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높아 텔레매틱스사업에 최적의 환경여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텔레매틱스 서비스가 시작될 후보지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선보인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음성기반의 차량항법 외에도 구급신고, 도난방지, 무선인터넷 접속, 차량문이 잠겼을 때 무선신호로 열기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며 일본, 미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 첨단기술수준을 자랑한다.

 해외시장에선 미국 GM사의 온스타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일본 도요타와 닛산은 올들어 2세대 텔레매틱스를 출범시켜 대중차시장의 젊은 인터넷 세대를 겨냥한 공격적 사업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국내 시장동향을 살펴보면 SK가 지난 4월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엔트랙 서비스가 예상보다 고전하는 가운데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완성차업계, 자동차보험업계가 독자적인 텔레매틱스 서비스로 시장추격에 박차를 가하는 형국이다. SK는 대대적인 마케팅 지원에도 불구하고 엔트랙고객수가 크게 늘지 않자 신용카드를 이용한 공짜단말기 보급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기아차, 르노삼성차는 차량출시때 장착되는 일체형 단말기로 시장석권을 노리고 있다. 손보사인 삼성화재는 사고시 현장출동시간을 크게 줄이는 텔레매틱스서비스망을 구축해 ‘고객을 찾아가는 보험서비스’를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KT까지 내년하반기 텔레매틱스관련 콘텐츠공급자로서 대대적인 사업준비를 추진해 오는 2004년경 국내 텔레매틱스 서비스가입자는 최소 100만명을 넘어서 e카 시대를 활짝 열어줄 전망이다.

 국내 텔레매틱스업계에서 주목할 현상은 그동안 개별적인 행보에 나서던 완성차업체와 무선망사업자, 콘텐츠업체, 단말기 제조업체간에 합종연횡의 집단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텔레매틱스사업이 일개 특정업체의 단순서비스만 가지고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