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카]디지털 바퀴 달고 정보고속도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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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6년 독일의 고트리브다임러가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선보일 당시만해도 자동차는 단순히 엔진, 바퀴, 몸체로 구성된 하나의 움직이는 기계였다. 그러나 1920년 미국에서 최초의 라디오 방송인 ‘KDKA’가 개국하면서 미래의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이후 자동차의 역사는 전자와 통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끊임없이 변천해왔다. 오늘날의 완성차는 2만여 가지 부품의 집합체다. 이 가운데 전기전자장치가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선. 대부분의 중형 승용차는 기존 옵션에 항법장치를 달면 전기전자장치가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를 넘는다. BMW·폴크스바겐 등 선진 자동차회사들이 내놓은 고급차의 경우 그 비중은 50%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가솔린엔진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쓸 수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은 디지털TV와 맞먹는 70% 수준이다.

 이처럼 자동차가 기계에서 전기전자장치의 결합체로 바뀐 것은 단순 이동수단에서 문화공간, 업무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대가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전자화 즉, ‘e카(Electronic Car)’화는 곧 부품의 전자화를 의미한다. 지난 78년 메르세데스 벤츠가 S클래스에 세계 최초로 장착한 ABS시스템은 자동차 부품의 전자화를 촉발시켰다. 벤츠는 이어 81년에도 운전석에 에어백 및 안전벨트 조임장치를 장착시키며 첨단 전자기술로 무장한 자동차시대를 열었다.

 자동차에는 또 10∼60개의 각종 컴퓨터칩이 내장돼 있다. 이 가운데 엔진제어나 멀티미디어기기에 쓰이는 컴퓨터칩은 486급 컴퓨터용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맞먹는 32비트급이다. 세탁기나 냉장고에 내장된 컴퓨터 칩이 8비트급인 점을 감안하면 디지털 전자화된 자동차의 지능은 일반 가전제품 이상이다. 

 지난 95년 벤츠가 내놓은 ‘벤츠 시리즈’에서 선보인 차량자세안정화장치는 칩과 센서로 구성된 대표적인 e카 컨셉트. 현재 에쿠스 등 국내 고급 승용차에도 쓰이는 이 장치는 ABS보다 두 단계 나아간 첨단장치다. 8개의 센서와 1개의 칩으로 이루어져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 차량의 자세를 잡아준다. 또한 고속주행시 운전자가 갑자기 핸들을 꺾어도 차가 뒤집히지 않는다.

 자동차 안전장치의 대명사인 에어백의 ‘지능’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고급 승용차에 내장된 스마트 에어백은 사고 종류별로 자동차가 알아서 8개의 에어백 중 어느 것이 터져야 할지, 또 에어백이 터지는 속도와 각도를 스스로 조절한다.

 현대자동차에 의해 국내에도 도입된 자동항법장치는 사고가 발생하여 운전자가 정신을 잃어도 자동차가 스스로 알아서 콜센터에 사고위치나 사고부위를 알려준다. 정비사가 이미 고장부위를 알고 찾아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수리가 가능하다.

 벤츠의 ‘디스트로닉’ 모델은 센서기술의 집합체로 꼽힌다. 차량 앞에 레이더를 장착하고 앞에 운행하는 차량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도로상황에 맞게 속도를 조절해준다.

 현존하는 최고의 e카로 꼽히는 BMW는 ‘i드라이브’를 통해 컴퓨터의 마우스처럼 간단한 조작만으로 각종 편의기능 및 통신기능을 수행하는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 기능은 자동차의 수백개 컨트롤 기능을 단 3개 등급으로 분류해 제어한다.

 이밖에 e카에는 편의·정보·환경 등을 지원하는 수많은 기능들이 장착된다. 그 분야를 세분화해보면 센서 및 제어기술을 통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함을 제공하는 지능형 차량분야, IT기반기술을 차량에 접목해 운전자에게 다양한 정보와 편의성을 제공하는 주행 정보분야, 21세기 환경정책에 대응한 환경친화차량분야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차량용 고급 미디어인 AV·DVD·내비게이션·텔레매틱스·지능형 교통시스템(ITS) 등이 이미 세상에 등장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연구소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인 자동차 시장에서 고가의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의 응용이 절대적”이라며 “국내 완성차메이커들이 e카 개발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카 개발에는 완성차와 더불어 부품업체들의 참여도 절대적이다. 현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기존 완성차 라인에서 각각 조립되던 여러 부품을 부위별 또는 연관된 부품별로 미리 조립해 하나의 부품 덩어리로 공급하는 ‘모듈’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듈방식은 부품업체들이 e카 개발에 본격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부품업계는 부품 및 조립공수를 축소하고 모듈 단위로 품질을 보증하는 첨단 모듈부품의 설계와 개발을 동시에 수행, 완성차의 개발기간을 단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모듈부품은 전자장치를 이용한 첨단장비가 대부분이다.

 e카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안전성과 편의성을 위해 탄생했지만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점도 많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차량고장의 32.1%가 전기전자장비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전자장비가 많아지면서 배터리가 이를 감당하지못해 차가 서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자동차의 디지털화는 가격 인상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완성차업계가 최첨단 e카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자동차가 생활의 일부인 ‘생활형자동차(Life Car)’로 바뀌면서 디지털 세상에 부합한 지능형 자동차에 대한 욕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최근 자동차 전자장비 개발을 위해 ‘HI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며 “BMW의 자동차 IT부문이나 포드의 벌텍스연구소와 같은 e카 개발전문조직으로 육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르노그룹은 향후 e카 연구개발에 전체 R&D 투자비의 30%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집처럼 편하고 사무실 공간처럼 인텔리전트한 e카는 자동차 업계의 생존전략임과 우리가 앞으로 타게 될 자동차인 셈이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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