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과 무선이 통합된 서비스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정작 자신이 이용하는 통신서비스가 유선에 기반한 것인지 무선에 기반한 것인지 모른다. 단 하나의 단말기로 집에선 정액제 유선요금으로 무제한 전화를 사용한다. 집 밖에선 이동전화다.
데이터 통신도 마찬가지다. 집 안팎에서 유선의 초고속인터넷을 쓰기도 하며 공공장소에서 무선랜을 통해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유무선 통합 서비스가 유럽에서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유럽의 통신사업자들이 유무선 통합이 대세며 이에 대비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조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무선 통합의 상징, 무선랜=런던을 상징하는 건물로 꼽히는 BT타워. BT는 지난 수년간 과도한 해외 지분투자 등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재무제표 개선을 위해 전망 좋은 무선 자회사인 BT셀넷 등을 매각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새로운 형태의 통신 서비스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관료적인 직원들과 권위주의적인 본사 건물이 BT를 ‘뇌없는 공룡’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BT가 남모르게 미래형 사업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는 게 유럽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BT이그나이트 본사 건물엔 한 청소부가 바닥에 너저분하게 깔려있는 랜선을 치우는 모습을 담은 광고판이 서 있다. BT의 언론홍보 담당자인 로저 웨스트베리는 “초고속인터넷도 무선으로 하는 시대가 열렸다. 우리는 기업간(B2B) 사업으로 무선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BT는 우선 유선기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 8월말 현재 50만명에 불과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내년에 100만명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유무선 통합을 시도하겠다는 계획이다.
BT는 법인 가입자를 대상으로 무선랜 사업에 들어갔다. 내년 6월께 400여 핫스폿 지역에 액세스포인트(AP)를 설치하고 오는 2005년 상반기까지 핫스폿 4000개까지 유무선 통합 서비스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장비업체가 유무선 통합 이끈다=BT의 유무선 통합사업이 2년 뒤의 비전이라면 장비업체인 노키아에는 당면 과제다. 피터 라산넨 공중망 무선랜 부문 담당자는 “통신장비 및 단말기 생간업체인 우리로선 무선랜을 무선 통신의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키아는 법인 고객 등을 대상으로 핀란드 내 인구 밀집지역에 AP를 설치해 놓고 공중망 무선랜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공중망 무선랜 요금은 통신사업자인 소네라를 통해 하나의 청구서에 합산된다.
노키아는 공중망 무선랜이야 말로 유럽형 2.5세대 통신 GPRS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본다. 최근 GPRS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공중망 무선랜이 조금씩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노키아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우선 기업 시장을 첫번째 시장으로 삼고 병원 등 공공 시장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향후에는 시장 잠재성이 큰 가정용 시장에 접근할 방침이다.
피터 라산넨은 “공중망 무선랜이 3세대 통신 대체용은 아니며 WCDMA와 조화를 이루며 통합형 서비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현재는 진입시기며 공중망 무선랜이 오는 2006년에는 소비자들이 선호자는 주력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콘텐츠 통합까지=유무선 통합에 대한 노키아의 움직임이 빨라졌으나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은 아직 콘텐츠 통합 수준에 머물러 있다.
BT도 법인 대상 사업에 국한됐으며 핀란드의 1위 사업자인 소네라, 노르웨이의 최대 통신사업자인 텔레누르 등도 하드웨어적인 접근은 아직 못하고 있다.
소네라와 텔레누르는 유선, 무선, 인터넷 서비스 등 모든 사업 영역을 영위한다. 소네라 임원인 빌레 사리코스키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아직 GPRS가 확산되지 않아 무선랜 서비스 등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으며 유무선 통합으로는 모바일로도 확인할 수 있는 홈페이지 서비스 보급 등에 주력한다”고 소개했다.
텔레누르 임원인 릭브라운도 “유선 인터넷으로 접속해 상품 등을 주문하고 이동전화 단말기로 각종 인증 작업을 거치는 정도의 통합작업이 진행중”이라고 설명했다.
유무선을 연결하는 포털 서비스 단계에서 통합이 이제 시작됐으며 하드웨어적인 통합 시도가 뒤따를 전망이다.
◇유럽과 격차는 불과 6개월=유선과 무선의 통신 융합과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콘텐츠뿐 아니라 시스템, 단말기 등 하드웨어적인 통합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유럽에 가장 통신이 앞서 있는 핀란드,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능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장비업체인 노키아는 이미 우리와 동일한 개념으로 장비 개발 막바지단계다. 소네라와 텔레누르도 지난해 후반부터 지난 상반기까지 국내 주요 통신 사업자가 진행해온 콘텐츠 통합에 뛰어들었다. 시차로 보면 6개월 안팎의 차이에 불과하다.
공중망 무선랜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유무선 통합 작업이 각종 브로드대역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통신사업자들은 현재의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연구실 속에서 유무선 통합 서비스가 곶감 빼 먹듯 등장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제도적 규정, 신규투자 회피, 사업자간 이전투구 등으로 유무선 서비스 통합에 주춤하는 사이에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있는 유럽은 맹추격하고 있다. 간격은 날로 좁혀지고 있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유럽의 유선통신사업 현황>
- 손진욱 KT 런던 지소 소장(ktlondon@btclick.com)
유럽의 주요 통신사업자들은 전반적인 수요 둔화와 과다한 부채로 경영위기에 몰려있다. 단적으로 유럽 주요사업자들이 격는 경영위기는 시장실패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글로벌사업 및 3G사업 참여 등 전략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인터넷 등 신규 사업부문을 제외한 주요 사업자의 유선사업 부문은 비록 성장이 둔화됐으나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했으며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내, 시외, 국제 음성전화서비스의 매출과 트래픽은 전반적으로 하락했으나 유선망을 이용한 인터넷 수요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전체적인 유선사업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인터넷 접속을 포함한 유럽의 유선시장은 한편으로는 방송과 통신의 사업영역이 융합되면서 케이블방송 사업자와 통신사업자간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의 통신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결되는 우리나라의 시장 구조와는 달리 생산자-도매사업자-소매사업자-소비자 구조의 유통라인이 조직화했다. 케이블방송 사업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선통신 서비스 제공 사업자는 시내망을 보유한 기간통신사업자로부터 완제품 또는 원료를 도매로 공급받아 제품을 판매한다.
예를 들면 BT, FT, DT 등이 음성 또는 ADSL을 생산하여 도매로 판매하면 각 도매사업자가 거느린 자체 소매사업단위 또는 재판매사업자가 제품(서비스)을 최종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따라서 최종 소비자인 서비스 이용자는 자기가 사용하는 제품(서비스)의 원산지(생산자)가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까지 시내망을 보유한 기간사업자가 민영화를 완료하지 않았거나 완료했다 해도 아직 1개 사업자가 시내망을 독점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최종 소비자가 어떤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든간에 제품의 원산지는 모두 동일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유통구조의 차이로 인해 규제정책이나 사업자의 시장관리기법이 우리와는 상이한 형태가 많고 한편으론 유럽통신사업자가 매우 보수적으로 인식되고 새로운 환경과 서비스의 수용이 늦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BT 등 그동안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업체들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배울 게 없다고 보면 오산이다.
유럽사업자들이 상당히 답답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여겨지고 경영전략의 실패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으나 장거리 경주를 하는데 100m 기록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기본이 충실한 유럽 각국의 규제정책과 튼튼한 제도 그리고 시장조사 및 고객관리 프로세스는 늘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