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언제 들어도 마음 푸근하다. 하지만 클래식은 청명한 가을 하늘과 닮아 있는 느낌이다. 왠지 모를 공허함을 클래식이 달래주기 때문일까.
그래서일까. 올 가을에는 여느 때보다 클래식 공연이 풍성하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부터 조트리오의 피아노 앙상블, 조르지 산도르의 피아노독주회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더구나 이번 공연들은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의 무대라는 점에서 클래식 애호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또 클래식에 처음 접하는 사람도 클래식의 묘미에 빠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올 가을, 클래식의 향연에 취해보자.
먼저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 내한공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으로 오는 24, 25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된다.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51년 창단된 오케스트라로 시카고심포니, 베를린필하모닉에 버금가는 최고의 교향악단. 스트라빈스키, 로린마젤, 주빈메타 등 세계적인 명성의 지휘자를 비롯해 국내 음악애호가에게도 친숙한 마르크 에름레르와 키타옌코도 상임으로 지휘봉을 잡은 바 있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 교향악단이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1998년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유리 시모노프가 지휘봉을 잡는다.
이번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만난 백건우의 피아노 연주는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며 새 희망을 전해 줄 것이다. 첫날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1번, 둘째날에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이 연주된다.
‘진정한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로 꼽히는 미하일 페투호프도 오는 21일 수원 경기도문예회관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미하일 페투호프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계보 2세대에 속하는 거장으로 현재 모스크바음악원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페투호프는 어느 연주자도 범접하지 못하는 치밀한 구도로 팽팽하고 긴장된, 그러면서도 마침내 모든 에너지를 유감없이 폭발시키는 연주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혁준 씨는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며 ‘듣고 난 후에는 다른 연주자의 음반을 잠시 치워두게 된다’고 평할 정도다.
마침 굿인터내셔널 모노폴리 레이블이 내한공연에 맞춰 ‘미하일 페투호프 모스크바 그레이트홀 100주년 기념공연 실황앨범’을 출시한 상태여서 미리 페투호프의 음악세계에 접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진정한 러시아 피아니즘을 맛보며 잊혀진 거장들의 광활한 세계에 몰입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곡은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다. 페투호프와 백건우의 연주 스타일을 비교하며 음미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가 아닐까.
솔리스트로도 활동중인 조트리오의 피아노 트리오 앙상블도 올 가을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피아노 조영방, 바이올린 조영미, 첼로 조영창 세 남매로 구성된 조트리오가 창단 25주년 기념음악회를 11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갖는다.
‘정확한 기교를 통해 폭넓고 흐트러짐 없는 앙상블’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조트리오는 각자 뛰어난 테크닉을 보유한 데다, 오랜 세월 음악세계를 공유하면서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의 대화로 완벽한 앙상블을 표현해 내는 것이 특징. 이 때문에 조트리오의 음악에는 친남매의 일체감에서 나오는 마력이 있고, 음색 역시 따뜻하고 풍부하다.
이들 3남매가 들려주는 25주년 음악회에는 조트리오의 열정을 가득 담아 첼로 독주곡 ‘헝가리안 랩소디/포퍼’ ‘아렌스키의 피아노 3중주 제1번’ 등이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조르지 산도르의 피아노 독주곡도 올 가을 정취를 더할 예정이다.
조르지 산도르는 헝가리 출신으로 20세기 최후의 거장인 바르톡에게서 물려받은 바르톡 음악의 진수로 통하는 인물. 현재 뉴욕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후학양성에 전력하고 있다.
1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바르톡의 댄스 모음곡은 1945년 1월 카네기홀에서 바르톡이 보는 앞에서 조르지 산도르가 초연한 곡이기도 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의 희망콘서트도 준비돼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2000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간염퇴치 운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캠페인성 연주회로 간염퇴치 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실천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매년 오케스트라와 협연공연 형태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올해는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실내악 프로그램으로 무대가 꾸며진다. 또 강동석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첼리스트 조영창과 파스칼 드바이옹이 참여, 환상의 하모니를 들려줄 예정이다.
공연은 오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