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에 도전한다>(4)시스템LSI; 인텔-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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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D램 소인국의 왕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D램뿐 아니라 반도체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시스템LSI(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비메모리 분야의 성적을 끌어올려 반도체 부문의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비메모리 분야의 최강자는 인텔이다. 시장이 메모리의 4배 이상 되는 만큼 전체 1위도 인텔이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해 237억달러의 매출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반면 삼성전자는 63억달러로 5위에 머물렀다. 비메모리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인텔은 90%에 달하는 반면 삼성은 20%에 불과하다. 결국 삼성의 비메모리 매출은 인텔과 17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시장 순위도 1위와 20위다.

 하지만 올 상반기 삼성의 성적표는 크게 호전됐다. 38억달러의 매출로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제치고 118억원을 달성한 인텔에 이어 반도체시장 2위로 부상한 것이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뛰어든 지 20여년만의 일이다.

 이는 물론 고부가가치 D램의 호조로 평균 판매가가 올랐고 플래시메모리 매출이 급성장한 것이 주 요인이었지만 비메모리 분야의 매출과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텔이 전년 동기대비 1%의 성장세에 그친 반면 삼성은 7%의 성장세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삼성전자가 시장 2위 자리를 이어가고 1위를 넘보려면 비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을 제고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인텔과의 이 험난한 차이(gap)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걸까. 인텔을 겨냥해 ‘펜티엄4’ 같은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만들 것인가.

 대답은 물론 ‘노(no)’다. ‘반도체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해 30년이 넘도록 CPU의 역사를 직접 일구며 연간 40억달러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인텔 인사이드’ 전략으로 독자적인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인텔과의 정면 승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삼성은 그러나 비메모리 시장이 광대하고 응용분야에 따라 특화된 시장이 형성되는 만큼 특화된 분야에서 업계 선두에 나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반도체시장의 선두권으로 급부상하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나 반도체업계의 대선배 TI 그리고 인텔의 34년 성장역사를 봐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제품이 사용되는 디지털 홈미디어, 무선통신, PC 등 응용시장을 손수 개척하며 함께 커온 것이다. 초기에 시장에 진입하면 그만큼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삼성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같은 시장 접근론이다. 삼성의 시스템LSI 1위 전략은 특화된 시장에서 체계적으로 접근, 서서히 정상을 넘보는 저인망식에 가깝다.

 2005년까지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제품군을 봐도 그렇다. LCD·PDP·유기EL 등 ‘디스플레이 구동 IC’ ‘스마트카드IC’, DVD플레이어 및 CDRW용 ‘광디스크 칩세트’, CMOS 이미지센서 등 ‘모바일 카메라 IC’, ADSL 같은 ‘퍼스널 네트워크 칩세트’ 등 적용분야가 명확하다.

 어떻게보면 자체 시스템 수요(캡티브마켓)를 겨냥한 것 같고 국내 업체들이 선전하는 분야에서 수입대체 효과를 노린 듯하다. 또 D램 신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삼성의 과감한 결단력이나 추진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삼성측의 생각은 좀 다르다. ‘잘 할 수 있는 것, 1위 달성이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분야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응용 분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삼성측은 보고 있다.

 64MD램을 국산화해 미국·일본을 따돌리고 D램시장의 왕좌를 지켜온 성공사례를 봐도 마찬가지다. ‘최고’가 가능한 분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집중적인 투자와 기술개발, 남보다 6개월에서 1년 이상 앞선 제품 출시전략이 그 것이다.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그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LCD 구동 IC(LDI)의 경우 한국이 최대 LCD 패널 생산국이 되면서 내년부터는 생산량이나 매출면에서 샤프와 히타치, 엡슨 등 여타 경쟁사를 따돌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스마트카드IC도 유럽·중국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삼성의 고속 성장세가 예상된다.

 삼성이 이처럼 독자 영역을 구축하면서 진군을 거듭하게 되면 인텔과의 한판승부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CPU와 D램으로 PC시장에서 상부상조하면서 ‘우군’임을 자랑해 왔지만 삼성이 시장 2위에 오르고 비메모리 사업을 본격화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인텔과의 운명적인 대결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이 비 PC산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확장형PC’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은 간과할 수 없는 양측의 접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메모리와 비메모리가 통합되는 차세대 시스템온칩(SoC)시장을 둘러싼 양 진영의 각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PDA·휴대정보기기 등에 들어가는 모바일 SoC분야는 인텔과 삼성이 각각 CPU와 플래시 메모리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양측의 향배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승패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급변하는 반도체시장의 환경 변화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고 양측 모두 이제 막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시장의 최강 자리를 놓고 총성없는 전쟁을 시작한 인텔과 삼성의 발빠른 행보에 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폴 오텔리니 인텔 사장(COO)

 크레이그 배럿(CEO)을 보좌하는 2인자로서 인텔의 내부 운영과 신제품 및 기술 개발, 사업기획 등을 도맡고 있는 최고운영책임자(COO) 폴 오텔리니 사장(49). 그는 인텔이 미래를 대비해 비(非) PC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이른바 ‘확장형PC’ 전략을 사실상 최일선에서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74년 엔지니어가 아닌 일반 직원으로 입사해 신제품 기획과 조직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서 지난 1월 사장에 취임했다. 전세계 8만4000여명의 인텔 임직원들에게 친근하면서도 따뜻한 경영자로 통하는 그는 새로운 인텔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주 임무다.

 그가 생각하는 미래 IT환경은 ‘커뮤니케이션과 컴퓨팅의 통합’이다. 영역이 파괴되는 컨버전스(융합) 시대에 인텔 역시 PC 분야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이다. 인텔이 ‘엑스 스케일’을 통해 유무선 통신시장에 진입하고 ‘아이테니엄2’를 통해 서버 등 기업컴퓨팅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텔이 CPU로 반도체시장의 1위에 올랐다면 앞으로는 통신과 컴퓨팅이 융합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텔은 올해만도 연간 50억달러의 설비자금을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아일랜드 등에 300㎜ 웨이퍼 전용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40억달러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90㎚급 미세회로공정을 안정화하고 65㎚급 기술을 개발중이다.

 ‘불황일수록 투자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오텔리니 사장의 공격적인 경영철학은 꺼지지 않는 인텔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임형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이윤우 디바이스솔루션네트워크(반도체총괄) 사장과 함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임형규 시스템LSI사업부 사장(49).

 지난 84년 수석연구원으로 비휘발성 메모리와 S램을 직접 개발했고 90년대 중반 삼성전자의 D램 사업을 1위로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0년부터 시스템LSI사업부를 맡아 삼성의 또다른 성공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온화하면서 차분한 그의 성격에 맞게 임 사장이 생각하는 비메모리 1위 전략은 광범위한 네트워크형 협력체계를 통한 솔루션 비즈니스다. 원가 경쟁에 승부를 거는 메모리와는 달리 시스템LSI는 다양한 핵심코어와 설계자산(IP)을 SoC화해 고객에게 종합적인 해결방법(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삼성이 부족한 부문을 메워줄 수 있는 국내외의 기술협력선 등 여러 협력자들을 확보하는 것이 실력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내부 실력 쌓기를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을 선도할 핵심기술을 개발할 연구개발 인력을 보강해 2007년까지 현재의 2.5배 수준인 7000여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 향후 5년간 4조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주력할 아이템은 ‘홈네트워크’와 ‘모바일 플랫폼’용 SoC다. 올해 18억달러에 머물고 있는 비메모리 매출을 2007년에는 70억달러, 세계 5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비메모리사업은 인재가 재산”이라는 임 사장은 “전략적 접근을 통해 특화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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