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좀처럼 불황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 각국의 유력 IT업체들이 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불황이 계속된 세계 IT경기는 올초만 하더라도 가트너 등 세계적 시장조사기관과 애널리스트들이 “7∼8%의 성장은 무난하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다소 나아질 것으로 기대됐지만 4분기에 들어선 현재 4% 성장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추정하는 등 IT시장이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등이 있어 그간 전통적으로 연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보여온 4분기 특수가 이런 추세대로 나가면 거의 실종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어 IT업체들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실제 월스트리트는 “최근 유례 없는 불황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설 등 세계 경제 불투명성까지 겹쳐 올해 말에는 크리스마스 특수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 등 유수의 경영자들도 “현재의 불황은 결코 경기순환론적인 침체가 아니다”고 경고하며 “기업들이 이번의 불황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비상경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컴퓨터기업을 이끌고 있는 IBM의 새뮤얼 팔미사노 CEO도 “각 부문의 기업 고객들이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날 때까지 기술투자를 미루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어 4분기 세계 컴퓨터경기도 고전이 예상된다”며 “경기가 워낙 불투명하고 어려워 세계 IT산업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어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반도체·통신·인터넷 등 세계 IT기업들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감원과 다양한 경비절감책을 실시하는 등 비상경영 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인 IBM, 지난 5월초 컴팩과의 합병을 성사시킨 휴렛패커드(HP), 세계적 통신업체인 노텔 등 내로라하는 IT업체들은 이미 대규모 감원을 실시했으며 상황에 따라 추가 감원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또 불필요한 출장과 정기적으로 열던 고객초청 행사도 없애는 등 소위 ‘짠돌이’ 경영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IT기업들은 마지막 돌파구로 연중 최대 수요가 발생하는 4분기 경기에 잔뜩 기대를 걸며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휴렛패커드·델컴퓨터·AMD·노키아·모토로라·소니 등 미국·일본·유럽의 세계적 IT업체들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들어있는 4분기 특수를 노리고 고성능의 신제품 출시는 물론 제품 할인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 2위 개인용컴퓨터(PC)업체인 델컴퓨터는 최근 하드디스크를 비롯해 각종 컴퓨터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PC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는데 앞으로 이같은 할인정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또 세계 최대 휴대폰업체인 노키아를 비롯, 이동통신단말기·서비스업체들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부진에 빠진 통신수요를 건져내기 위해 두팔 걷고 나섰다. 야후·e베이 같은 세계적 포털업체들도 사이트 단장, 품목 정비 등으로 4분기 판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시장조사기관들은 올해 연말 특수는 실종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어 IT업체들의 위기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