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기술유출과 기술인력

최근 IT업계가 잇단 기술유출사건이라는 유쾌하지 못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검찰이 이미 구속수사를 발표한 기술유출사건만도 상당수에 이른다. 더욱이 기술유출과 관련한 고소·고발 접수만도 매달 10여건에 이른다고 검찰 관계자는 말한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기술유출사건은 대부분 대한민국이 종주국으로 자랑하는 CDMA 관련 기술이고 중국이 유출 대상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중국과 CDMA라는 두 개의 공통된 키워드를 지닌 일련의 기술유출사건은 업계는 물론 국민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명성을 날리며 한국의 제조업을 무섭게 따라잡고 있는 중국에 CDMA에서까지 추격을 허용할 경우 우리의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 전반에 기술유출에 대한 경각심과 경계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검찰에서도 부쩍 기술유출사건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고, 업계에서는 기술유출방지협의회를 만들겠다고도 한다.

 기술유출은 수년 또는 수십년간 쌓아온 해당 기업의 재산을 몰래 빼돌리는 행위며, 특히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부에도 막대한 피해를 준다. 남의 것을 몰래 가로채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기술유출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며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의 큰 목소리 저편에는 또 다른 반향이 있다. 기술인력들의 불만이 그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거대한 힘을 가진 기업에 종속된 ‘현대판 노예’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또 사회적 약자인 자신들의 어렵고 억울한 처지에는 모두들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들은 기업이 서약서를 내세워 자신들을 볼모로 삼고 있으며 전직이나 이직을 방해하며 직업선택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우에 따라 괘씸죄에 걸려 억울한 불이익까지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전직한 엔지니어들에게 기술유출 혐의를 씌워 오랫동안 민형사소송에 시달리게 할 수도 있고 이 경우 비록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당사자는 이미 도덕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후라는 게 골자다.

 대부분 기술유출사건은 단순한 기술절도보다 기술인력 스카우트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게 사실이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실천하려는 엔지니어들과 이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업의 첨예한 대립이 빚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함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등 제도적으로도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인력들이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기술유출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크나 큰 자산인 기술인력을 속박하는 도구가 돼서는 안되며, 또한 억울한 피해를 입게 해서는 더욱 안된다. 이들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정부는 틈만 있으면 기술인력 양성을 외치지만 정작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알아서 할 일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기술인력 양성은 거창한 구호나 교육보다 기술인력들이 자긍심을 갖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유성호 정보가전부 차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