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 영화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에서 온 것이다. 일본 배급사가 ‘꾸러기 더키’의 TV 방영권과 비디오 판매권을 계약하려 한다는 말이었다. 전세계 배급권을 희망하는 영국 배급사도 적극적이었다. 더키가 벌써 독립할 준비를 끝낸 것 같다. 방송 3개월만에 삼성에버랜드·MBC프로덕션과 ‘꾸러기 더키’ 컨소시엄을 체결, SICAF2001에서 ‘최고의 TV 및 비디오시리즈’상을 수상하는 등 제작완료 전부터 비디오·DVD·게임·출판 등 대표적인 캐릭터업체인 위즈엔터테인먼트와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하는 등 더키는 오래 전부터 작품성과 사업성 모두에서 커다란 가능성을 보여줬다.
더키가 세계시장에 첫선을 보인 때는 지난해 4월 프랑스 파리의 ‘MIP-TV’. 이곳에서 5분짜리 4편의 에피소드만으로 전세계 30여곳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것도 북미·유럽·일본 등의 굵직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러브콜을 한 것이다. 물론 몇가지 문제는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스토리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고, 이것은 곧 기획의 한계를 뜻했다. 기획력의 부재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고질병으로 인식돼 왔지만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시장만으로는 수익은 커녕 제작비도 보전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제작할수록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뛰어난 제작 기술력만 믿고 안이하게 제작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작품성과 사업성을 갖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기획부터 다시 검토해야 했다. 이미 2개월 후부터 TV 방영 계획이 잡혀 있어서 기획을 다시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지원 감독의 강경한 의지와 ‘황금시대’ ‘국희’의 정성희 작가, 그리고 ‘홍길동’ ‘경찰특공대’의 이한호 작가 등이 합류함으로써 반대 상황은 종료됐다.
작품성과 사업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이 하나의 숙제를 놓고 더키 기획팀은 숱한 기획 회의와 시장 조사를 반복했다. 그 가운데 내린 결론은 대중성과 상업성을 혼동하지 말자는 것. 대중성 있는 작품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한다. 지나치게 상업성만을 강조한 작품은 오히려 대중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유아를 타깃으로 한 작품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대중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인류 공통의 아이콘인 휴머니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위트와 동심은 유아는 물론 부모 세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타깃층을 형성할 수 있는 최고의 컨셉트였다. 꾸러기 더키가 펼치는 유쾌하고 따뜻한 구름나라 이야기. 이 한 문장이 더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특히 대부분의 유아 프로그램이 범하는 실수인 황당한 설정과 현실적이지 않은 스토리 전개를 ‘꾸러기 더키’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했다. 이 때문에 구름 나라에 사는 더키와 이웃들은 농사를 안 짓는 대신 슈퍼마켓 비행선에서 생필품을 사야 하고, 구름을 만들려면 빛과 수증기를 응고한 연료로 공장을 가동시켜야 했다. 또한 구름 나라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는 완구로 만들어도 작동될 정도로 설계됐다. 만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활용하되, 그 근거는 과학적 사고와 리얼리티인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더키 팀들은 더키가 재채기하면 감기에 걸렸고, 더키가 얼굴을 찡그리면 눈물을 흘렸고, 더키가 미소를 지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더키는 전형적인 일곱살이다. 악의없는 호기심과 돌발 행동으로 놀라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정헌열 나래디지털 PD borinym@naraydigit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