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게임문화 현장을 가다>일본편3-전환기에 선 게임산업

 지난달 열린 도쿄게임쇼를 둘러본 참관객들은 대체로 규모가 줄었으며 그다지 눈에 띄는 게임이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국내 게임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제 도쿄게임쇼가 점점 집안잔치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신랄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매년 2회 열리던 도쿄게임쇼가 올해는 1회로 줄어든 것이나 희소성이 높아졌음에도 참관객(15만명)이나 출품업체수(80개)가 예년에 비해 그다지 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평가가 크게 어긋난 것은 아니다. 주관단체인 일본 게임산업협회(CESA) 측은 게임업체들의 불경기와 대작이 게임시장을 주도하는 추세에 따라 연 1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스트리터 파이터’를 개발해 전설적인 게임개발자 반열에 오른 캡콤의 오카모토 요시키 전무는 20년 동안 게임개발에 관여해왔지만 요즘처럼 고민이 많은 적은 없다. 최근 게임추세가 그래픽이 화려한 타이틀을 선호하는 만큼 새로운 게임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급증하고 있지만 게임 라이프사이클은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초대작 게임들이 시장을 주도하다보니 게임 종류는 늘어난 데 반해 한 게임당 올릴 수 있는 평균 수익률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어 게임개발사들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일본 게임산업이 직면한 위기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게임산업은 이제까지 고공성장을 거듭하면서 1조5000억엔까지 그 규모를 확장했지만 미래를 낙관하기는 다소 어렵다. 이미 내수시장은 지난해 0.6% 성장이라는 미미한 성장률로 포화상태를 확연하게 드러냈다. 만성적인 일본 경기침체로 개인소비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게임시장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여기에다 킬러 애플리케이션 개발의 어려움, 몇몇 업체의 과점화로 인한 신규업체들의 진입부재, 소자화 현상과 수요층 확대의 한계 등은 일본 게임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침체 여파, 아이디어 한계 상황 직면=일본 총무성의 가계조사에 따르면 98년 이후 일본의 가구당 월간 지출비가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월간 지출비의 10%를 차지하는 교양오락비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2000년 게임 등이 포함된 교양오락비는 3만2126엔으로 전년 3만33378에 비해 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이 게임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일본 게임은 내수에서 99년 10.5% 감소, 2000년 14% 증가, 2001년 0.6% 증가 등으로 경향적인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PS2) 출하로 수요에 숨통이 트이기는 했으나 2001년 미미한 증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향후 새로운 게임기가 출시되기까지 3∼4년 동안은 내수시장의 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기침체도 침체지만 일본 게임산업이 맞딱뜨리고 있는 문제도 내재돼 있다. 소비의 위기에는 “만들 만한 것은 다 만들었다”는 생산의 위기가 함께 맞물려있다. 액션·슈팅·롤플레잉·전략 시뮬레이션 등 각종 장르와 사랑·스포츠·역사·모험 등의 테마에 이르기까지 이제 더 이상 게이머들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게임 개발사의 고민이다.

 ◇과점 현상 뚜렷=이같은 상황은 몇몇 대형 업체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게임 시장이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대작 위주로 흘러가다보니 제작비나 광고비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뛰고 있다. 스퀘어의 ‘파이널 팬터지’의 경우 이미 500억엔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며 최근 출하된 시리즈11 개발에만도 60억엔 이상이 들어갔다.

 게임도 문화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띠고 있는 만큼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보충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신규 플레이어들의 참여가 필수적이지만 이같은 구조 때문에 젊은피의 수혈이 어려워지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연구하고 있는 도쿄대 위정현 교수는 “일본 게임산업도 과점화 현상으로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이는 새로운 주자들의 시장진입을 막거나 생존 사이클을 짧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일본 게임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게임SW 업체간에 M&A가 활발해지거나 하청계열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몸집을 키우지 않고서는 게임개발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으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대기업의 우산속으로 들어가자는 계산 때문이다.

 고나미는 최근 다카라·겐키·허드슨 등 3개 업체를 흡수 합병했으며 지난달 열린 도쿄게임쇼에서 공동 부스로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경우 전체 게임타이틀 가운데 10%만이 자체 개발하고 나머지는 모두 게임하우스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게임하우스의 독립적인 개발도 있지만 소니가 자금 일부와 기획력을 제공하는 형태의 반하청식 개발도 상당부분 차지한다.

 ◇게임 영역확장, 글로벌 전략으로 승부=일본 게임업체들은 이 같은 문제를 글로벌 전략과 게임 영역을 확장하는 두가지 방향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일본 게임협회인 CESA의 와타나베 가주야 전무는 “아동용 위주의 게임시장에서 청소년·여성·성인·노인층들을 대상으로 게임 수요층을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동용 게임분야의 대명사인 닌텐도마저 최근 캡콤과 손잡고 청소년 이상을 타깃으로 하는 게임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소니 PS2의 경우 게임기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영화·방송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 기기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어 게임의 영역 확대 및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와의 접목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게임업체들이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글로벌 전략이다. 사실 내수시장의 침체에 비해 해외시장에서의 성과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지난해 일본 게임 출하규모 가운데 무려 3분의 2 가량인 9700억엔이 해외시장에서 소화됐다. 특히 내수시장 0.6% 성장에 비해 해외시장에서는 53%라는 높은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SCE는 118개국에 진출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PC게임이 강세를 띠고 있는 북미시장과 유럽시장에서 PS2 등 비디오 게임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PS2는 현재 4000만대 출하량 가운데 2800만대가 북미·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판매됐다.

 ‘삼국지’ ‘노부나가의 야망’ 등 아시아적인 게임 타이틀을 만들어온 고에이도 거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물론 미국·유럽 시장을 겨냥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고에이의 고마쓰 기요시 COO 겸 사장은 “일본에서 충분히 수익을 얻은 후 아시아 및 세계 시장으로 나간다는 것이 고에이의 글로벌 전략”이라며 “현재 세계시장에서도 먹힐 수 있는 액션·팬터지·SF 게임의 개발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우주적인 세계관을 표방하고 있는 X박스용 타이틀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5년에 1000억엔 매출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캡콤 역시 글로벌 전략을 통해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도쿄(일본)=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일본 게임기 업체의 고민

 지난해 게임기인 드림캐스트 생산을 포기하고 게임SW 사업에 주력한 세가는 올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반면 새롭게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진출한 MS는 X박스로 인해 2003년 회계연도까지 2년 동안 18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게임 타이틀 개발사인 고에이는 지난 3월말 끝난 회계연도에서 전체 매출의 23%인 55억엔을 순익으로 올렸다. 그러나 PS2로 유명한 SCE는 같은 기간 1조엔 매출을 올렸지만 순익 비중은 8.3%에 불과하다.

 세가와 MS의 상반된 상황이나 고에이와 SCE의 순익 비교는 게임기 업체들에 고민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게임기 하나를 개발해서 수익을 거둬들이기까지는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에서 밑지고 소프트웨어로 돈번다”는 것이 게임산업의 정설처럼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게임기 사업을 끌고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가장 고민이 많은 업체는 역시 소니(SCE)다. 전세계 비디오 게임기 시장을 60% 이상 장악하고 PS2를 4000만대 이상 판매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게임기산업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만큼 어깨도 무겁다. 새로운 게임기가 출현할 때마다 5∼6년주기로 성장을 반복하는 이 시장에서 소니의 역할은 막중하다. 특히 세가가 게임기사업을 포기한데다 닌텐도가 SW개발에 주력하고 MS마저 아직 자리를 못잡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소니 혼자서 게임기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 PS3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부담도 만만찮다. MS가 X박스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지속적인 비용투자를 밝히고 있는 대목도 소니로서는 부담스럽다.

 소니 측은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소니가 게임기사업에서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흑자 폭이 적을 뿐 게임기사업 자체로도 수익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 게임기가 아닌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며 MS와의 경쟁을 의식한 가격인하도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닌텐도의 경우는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매출 호조로 2001년 순익이 전년 대비 10% 증가했지만 게임 타이틀 사업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닌텐도가 머지 않아 차기 게임기 개발에서는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것 물론 쉽지 않다. “게임산업은 하드웨어 위에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라는 소니 후쿠나가 부사장의 말처럼 게임기 사업의 포기는 결과적으로 게임 SW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