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를 잘게 나누는 연주 중심의 음악 펑크(funk)는 선율 위주로 음악을 듣는 우리 팬들과는 별 인연이 없는 음악이다. 우리에게는 형용사 ‘펑키’로 더 알려진 이 음악은 가끔 춤출 기분이 날 때는 끌릴지 몰라도 감상용으로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최근 일각의 팬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있는 그룹 ‘불독맨션’은 데뷔앨범의 제목을 ‘펑크’로 내걸었다. 멤버들이야 그저 신난다는 뜻에서 붙였다고는 하지만 우리 청취 정서를 감안할 때는 참으로 과감한 타이틀이다. 물론 이들은 제목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나는 펑크를 연주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밴드에 의한 록’은 성공사례가 거의 없다. 이점에서도 불독맨션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이들과 유사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롤러코스터’와 최근 ‘낭만 고양이’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체리필터’의 이례적 성공이 말해주듯 ‘밴드 록’이 날갯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독맨션은 이 시대 음악작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이한철의 그룹이라는 점에서 신인밴드임에도 오래 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대학가요제 대상을 타면서 제도음악계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솔로 앨범이나 그룹 지퍼를 통해 오히려 인디 쪽으로 선회한 인물이다. 그의 지향은 앨범 수작으로 꼽히는 ‘Milk’의 ‘똑같은 길을 가는 건 싫어’라는 노랫말 하나로도 알 수 있다.
앨범은 한마디로 유쾌한 펑키 파티다. 타이틀곡 ‘Destiny’를 비롯해서 이미 영화음악으로 소개된 ‘Apology(사과)’, 연주 하모니가 무척이나 견고한 ‘Milk’, 스카 리듬을 그들 식으로 해석한 ‘Stargirl(내 사랑을 받아주오)’ 등 전곡이 매력적이다. 이한철의 ‘곡 만들기’ 재능 또한 우리를 기쁘게 한다.
색깔·템포·느낌 등을 다채롭게 가져가려는 밴드의 갖가지 노력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수록곡들은 ‘한국에도 이런 밴드, 이런 음악이 있었나’하는 경이감마저 부른다. 특히 한국적인 멜로디를 붙여 청취자에 다가가려는 고민이 투영된 곡 ‘눈물의 차차’와 내달리는 느낌으로 연주의 맛을 최대한 부각시킨 ‘She is my dance sister’는 그들 음악 정체의 좌우 양극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모던 록은 그동안 마니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독맨션은 거기에 펑키 댄스의 즐거움을 이입해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들은 또한 음반이 아닌 공연으로 밴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한철은 “방송도 출연하지만 우리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활동은 라이브”라면서 “공연할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불독맨션은 그러나 주류 TV음악과 분리된 음악을 들려주는,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협소한 주류음악에 감염된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주류음악은 비주류 감성의 수혈이 절실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2002년의 수확이라 할 앨범이다.
임진모(http://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