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뮤지컬은 사랑을 테마로 다룬 것이 많다. 순수 국내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도 형제간의 우애를 그린 이야기다. 하지만 ‘사비타’는 작위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를 넘어선 인간애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뮤지컬과 구분된다.
7년만에 찾아온 동생 동현과 형 동욱. 부끄러움 많은 노총각 동욱, 젊은 시절 겪은 방황과 좌절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동현과 실수투성이 유미리는 겉으로는 모진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내면에는 깊은 이해와 사랑이 흐른다.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진정한 애정이 있기에 더욱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동욱, 동현이 감추고 있던 상처를 드러내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 동현이 묻는다. ‘이젠 무얼 하지?’ 그러자 동욱이 ‘밥이나 먹지’라고 답한다. 이 자조적인 대화속에서 발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다. 희망은 절망의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록 자신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 꿈을 잃어버린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느끼고,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가슴에 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사비타’의 매력이 아닐까.
이 때문일까. ‘사비타’가 창작 뮤지컬로는 국내 처음으로 1000회 공연(24일)을 돌파했다. ‘넌센스’ ‘지하철 1호선’ 등 외국 뮤지컬의 번안 작품이 1000회를 넘어선 적은 있지만 순수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국 뮤지컬의 자존심을 이어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비타’는 오는 11월 7일까지 계속된다. 이 가을, 20만 관객이 느낀 사랑과 감동의 물결에 젖어보거나 한국 뮤지컬의 미래를 점쳐보고 싶다면 ‘사비타’를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문의 (02)552-2035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