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파출소 DVR 도입 계획 왜 문제되나

 올해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의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일선 파출소 DVR 도입이 발주 과정의 무원칙과 업체간 과열경쟁으로 번져 파행이 우려된다. 이에 따라 정확한 기술평가를 거친 입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배경=지난달 20일 전주시 금암2파출소에서 일어난 경관 피살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은 파출소 내 감시장비를 교체키로 하고 이를 각 지방경찰청에 지시했다. 강력사건이 파출소 내부에서 일어나나 낙후된 감시장비 탓에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건이 일어난 전주시 금암2파출소의 경우 테이프에 녹화하는 아날로그 감시장비가 있었지만 시간마다 테이프를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작동을 중지해 놓았다. 이에 따라 파출소 내에서 취객이나 범죄용의자가 경찰에게 폭행을 하거나 심지어 방화를 저질러도 정확한 증거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2930개 파출소 가운데 16%에 불과한 469개 파출소가 감시장비로 DVR를 사용한다. 그나마 DVR 사용 파출소 중 311곳이 서울에 집중돼 있으며 지방은 보안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특히 경기도와 충남 관내의 파출소 중 DVR를 사용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 경찰청의 지시가 있은 후 경기, 전북, 부산지방경찰청이 잇따라 DVR 도입계획을 밝혔으며 다른 지방경찰청도 연말까지 감시장비 교체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문제점=경찰청의 이번 조치는 파출소 내 감시장비를 선진화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도입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업체와의 계약이 경찰청이 아닌 지방경찰청이나 심지어 개별 파출소 단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DVR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제품을 고르다보니 현장에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능보다는 가격이나 업체의 로비에 의해 제품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DVR 업체들도 경찰과 관련된 사내인력을 수소문해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 실제로 강원지방경찰청의 모 파출소는 동영상녹화카드 업체의 제안에 의해 DVR 구입이 아닌 30만∼40만원 정도인 동영상녹화카드를 기존 PC에 설치해 DVR를 대체하려는 시도마저 한다.

 예산편성 자체도 주먹구구식이다. 각 지방경찰청이 개별 파출소에 배정한 DVR 구입예산을 살펴보면 부산지방경찰청이 240만원이며 전북지방경찰청이 162만원, 경기지방경찰청이 135만원이다. 지역마다 파출소 실정이 거의 같다고 했을 때 부산지방경찰청과 경기지방경찰청의 구입예산이 105만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경기지방경찰청은 단순녹화뿐 아니라 파출소-경찰서-지방청간 통합 모니터링에 대비해 네트워크 기능이 있고 녹화된 영상을 CD에 백업할 수 있는 제품을 설치할 계획인데 이러한 제품은 시장에서 200만원대 중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전망=경찰청은 아직까지 이에 대해 문제로 여기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각 지방경찰청이 합리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현재로서는 경찰청에서 기술평가와 입찰에 의한 사업자 선정을 할 방침은 없다”고 말했다.

 DVR업체의 한 관계자는 “벌써 수의계약에 의해 업체간 출혈경쟁이 일어났으며 DVR 도입의 의미 자체를 상실할 수도 있다”며 “품질이 낮은 제품을 구입하면 과거 VCR에서 나타나던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DVR협의회는 경찰청에 이러한 문제점을 정식 제기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제대로 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술평가를 거친 후 이를 충족하는 복수의 사업자를 선정하고 이 사업자를 대상으로 지방경찰청이나 개별 파출소에서 입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연말까지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와 계약 협의, 설치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이달중에는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