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이의 엄마, 한사람의 아내로서의 주부생활도 참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뭔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직업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림창업투자의 하상미 심사역(31)은 9살, 3개월 두 아이를 둔 결혼 10년차의 가정 주부다. 졸업 전, 그녀는 당시 학과 조교였던 남편과 결혼했다. 최고의 두뇌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업계에 여자, 그리고 주부라는 일종의 핸디캡(?)을 갖고도 당당한 심사역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그녀는 이력보다는 오히려 그 능력에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사회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력이 없는 가정주부의 삶이 스스로를 자꾸 위축시키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일을 찾게 됐습니다.”
이같은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 공인회계사시험 준비였다. 사회경험도 없는 가정주부가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전문직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틈틈이 공부한 끝에 지난해 7월 공인회계사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물론 한국은행에 다니는 남편도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의 문을 두드렸으나 나이도 있고 아이도 있는 저를 뽑아주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우연히 찾게 된 곳이 한림창투였습니다. 당시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저를 기꺼이 채용했습니다. 아직도 저를 그때의 상황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회사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 심사역은 우연한 기회에 인연을 맺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벤처캐피털리스트에 대한 매력에 새록새록 빠져든단다.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오히려 여성에게 더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과 산업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요구하는 직업의 특성상, 꼼꼼하고 세밀한 여자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직업에 비해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도 뛰어나고요.”
하 심사역은 지난 2월에 입사, 최악의 벤처 침체기에 벤처캐피털리스트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게 하 심사역의 생각이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투자대상기업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나무를 키우는 일과 비슷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좋은 싹을 찾아 거름과 물을 주고 애정을 쏟아야지만 그 싹이 잘 자라 좋은 열매를 맺듯이 말입니다. 힘든 여건이지만 오히려 거품기를 거치며 겉멋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길게 본다면 저에게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초보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맺을 열매가 기대된다.
<글=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