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주난에 허덕여온 반도체장비 시장에 삼성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사실상 국내 유일의 대규모 장비 발주처인 삼성전자의 12라인 설비투자계획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관련 설비발주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반도체부문에 4조900억원의 설비투자계획을 발표하자 장비업체들은 그동안 수주확대 꿈에 크게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올해 액정표시장치(LCD)분야를 제외한 순수 반도체부문 투자액이 2조7300억원 규모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데다 투자의 대부분이 업그레이드 투자에 한정, 실제 장비업계의 체감경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따라서 삼성전자 12라인 300㎜ 설비투자 소식은 관련 장비업체에는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맞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반도체 경기침체가 예상외로 길어지면서 설비투자 보류를 결정하는 반도체업체들이 늘어나는 상황에 나온 것이어서 장비업계의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삼성, 얼마나 투자하나=삼성의 내년도 12라인 300㎜부문 투자규모는 대략 월 2만3000장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분기로 예정된 페이즈1은 월 1만3000장, 3분기말이나 4분기초로 계획된 페이즈2는 1만장이다. 따라서 통상 2만장을 처리할 수 있는 300㎜ 팹을 짓는 데는 최소 20억달러에서 최대 30억달러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의 12라인 투자비용은 최소 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삼성의 12라인 투자는 노광공정장비 업체들만 수혜를 입는 업그레이드 투자가 아닌 신규 설비투자란 점에서 관련 장비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즉 노광, 현상, 식각, 이온주입 등 전공정 전분야와 조립과 검사에 이르는 후공정분야, 클린룸설비분야, 웨이퍼와 감광액 등 소재분야 모두 직접적인 혜택을 받게 될 것이란 얘기다.
반도체장비업계는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12라인이 1분기와 3분기에 나뉘어 구축될 것으로 보고 상반기와 하반기 고른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에 장비공급이 확실시되는 장비업체들은 내년도 시장전망을 낙관, 벌써부터 내년 매출목표를 올해보다 큰폭으로 늘려잡고 있다.
◇소자업계 투자 확산되나=반도체장비업계는 삼성전자 12라인 투자 본격화 소식이 다른 소자업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미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통합법인으로 출범하는 ‘동부아남반도체’가 2006년까지 제조설비 확충에 총 1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우선 내년에 최소 3100억원 이상의 금액을 설비투자에 사용할 예정이다.
최근 ‘선 정상화, 후 매각’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도 회사 향배와는 관계없이 내년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할 것이 확실되고 있다. 하이닉스측은 이와 관련, “자산매각, 증자 등을 통해 1조2000억원 가량을 확보, 차세대 설비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12라인을 필두로 동부아남반도체의 비메모리,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투자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소자업계의 설비투자 금액은 4조5000억원 수준에 달해 반도체장비업계가 내년에는 오랜 가뭄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장비업계 관계자들은 “내년에는 국내 반도체업계의 설비투자 규모가 올해보다 2배 수준에 육박할 전망”이라며 “특히 대부분의 투자가 신규라는 점에서 반도체장비업계의 내년도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