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찬바람 불면 비디오 한편의 여유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추운 날씨와 스산한 기운 탓에 외출이 꺼려지는 겨울이야말로 안방극장이 가장 성황을 이루는 시기. 온기 감도는 거실에서 스낵이나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영화 한편 감상하는 시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11월에는 왁자지껄한 액션보다는 잔잔한 드라마나 풋풋한 감동이 묻어나는 멜로가 주를 이룬다. 11월에 가장 기대되는 히트작은 취화선과 오아시스. 두 작품 모두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점과 국내 극장가에서도 적지않은 관객을 불러모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20년만에 다시 만나는 E.T. 특별판, 탄생 60주년을 맞는 덤보 등은 아이들과도 같이 보면 좋은 대표적인 가족영화다.

 

 ◇ 취화선·오아시스 ‘예약 필수’=취화선은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오아시스는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신인연기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들이다. 국내 관객도 모두 150만명 가량을 동원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한국영화 대표작으로 인기가 높다.

 취화선은 거장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이 다시 만나 빚어낸 한편의 예술작품이다. 최민식,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도 볼거리며 무엇보다 오원 장승업의 그림과 호방한 기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경주 양동마을, 제천 갈대숲, 석모도, 동강, 영종도, 선암사, 뱀사골 등의 수려한 경치를 카메라에 담아 한국의 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1850년대 청계천 거지소굴 근처에서 거지패들에게 죽도록 맞고 있던 어린 승업을 구한 김병문은 역관 이응헌에게 승업을 소개한다. 승업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를 추구할 것을 독려하며 오원이라는 호를 지어준 김선비에 의해 승업은 예술의 길로 접어든다.

 오아시스는 이창동 감독이 박하사탕의 주연진인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결합해 만든 사랑을 테마로 한 멜로물이다. 이창동 감독이 말하는 사랑은 일반인들의 그것이 아닌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는 이들의 처절하고도 절실한 사랑이다. 국내 개봉부터 숱한 화제를 뿌린 만큼 베니스영화제의 수상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주변의 반응.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겠다는 감독의 말처럼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사회 부적응자의 사랑이 정말 아름답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사랑 안에서 사회부적응자 종두는 듬직한 남자가 되고 장애인 공주는 정상인으로 걷고 말한다. 그러나 운명은 때로 잔인하게 엇갈린다.

 

 ◇ 외계인과 아기 코끼리의 연륜 대결=가족영화 2편에 주목할 것. 1982년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은 영화 E.T.가 20년 만에 특별판 비디오 및 DVD로 11월 1일 출시된다. E.T.는 미국내 4억달러의 흥행기록을 달성해 97년 재개봉된 스타워즈에 의해 기록이 깨질 때까지 무려 15년 동안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삭제된 장면 복원과 첨단 컴퓨터 기술을 통해 개선된 부문, 디지털 방식으로 리마스터링된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DVD에서는 풍부한 스페셜 피처들이 제공된다. E.T. 초기 컨셉트 스케치와 탄생과정 스토리, 거장 존 윌리엄스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실황공연, 출연진과 제작진 20년 만의 재회현장, 포토 갤러리와 홍보자료 보관실, 인터랙티브 우주탐험 여행 등이 부가영상으로 수록돼 있다. 웅장한 5.1채널의 DTS사운드 등 소장용 타이틀로 가치를 높였다는 점에서 마니아들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20년전 엄마와 아빠가 보았던 영화를 자녀들과 함께 다시 보면서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

 브에나비스타는 덤보 탄생 60주년을 맞아 아기 코끼리 덤보 특별판을 DVD로 선보인다. 스페셜 피처로 제공되는 덤보예찬에서는 디즈니 제작자들이 덤보 매력과 감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단편 애니메이션 아기 코끼리 엘머, 하늘을 나는 생쥐 등도 함께 수록돼 있다. 디지털 복원작업을 통해 풍부한 컬러와 생생한 화면으로 찾아온 덤보 역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향수를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안방극장서 재기 노린다=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상당한 영화적 재미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기쿠지로의 여름도 안방극장을 찾아온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전국 관객 13만명으로 극장 흥행은 비참한 수준이다. 특히 100억원 가량의 제작비와 장선우 감독, 임은경 등의 지명도에 비하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재앙이라는 말이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비교적 신랄한 편이지만 게임 요소의 접목 등 볼거리가 없지는 않다는 반응도 있다.

 이 작품은 동화 속 얼어죽는 성냥팔이 소녀를 10대 취향의 게임 속으로 옮겨놓은 영화다. 게임방 아르바이트생 희미를 짝사랑하는 중국집 배달원 주는 좋아하는 게임도 사랑도 어느 것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어느날 희미를 닮은 성냥팔이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엄청난 게임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재밌는 영화다. 일본 코미디언이자 배우, 감독, 작가인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유머와 따스한 감성이 배어나온다. 좌충우돌 50살 어른과 진지하기만 한 9살 소년의 엄마찾아 삼만리가 재미나게 펼쳐진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연기는 과장된 묘사에 의한 억지 웃음이 아닌 기발한 천진난만함에 미소를 짓게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아빠가 죽고 엄마도 떠나고 할머니와 살게 된 이미 철들어 버린 소년, 전직 야쿠자로 묘사되지만 내세울 것도 없고 마누라에게서도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건달.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의 실제 아버지 이름이기도 한 기쿠지로와 보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마사오와 기쿠지로를 통해 슬프고도 유쾌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 낸다.

 

 ◇ 야한 영화 좋아하세요=11월에는 성을 소재로 한 영화 두편이 준비돼 있다. 마법의성과 둘하나섹스. 물론 극장 흥행에서는 별로 재미보지 못했지만 안방극장에서 오히려 더 인기를 끌 기대주들이다. 둘하나섹스는 지난 97년 제작됐으나 영등위로부터 두 번의 등급보류로 개봉이 안되다가 헌법재판소 판결 끝에 5년 만에 개봉된 작품이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옴니버스식의 이 영화는 서른살의 남녀가 오직 섹스에만 탐닉하는 내용과 열아홉살의 남녀가 환락과 퇴폐 끝에 죽음을 맞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섹스를 화두로 담고 있지만 현사회를 바라보는 냉점함과 조롱이 담겨있고 단순한 쾌락을 넘는 페이소스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다.

 마법의 성은 솔직한 성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주인공 성빈은 보통의 한국 남성이지만 테크닉이 부족하고 관계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약혼녀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선언을 당한다. 단 3번의 기회는 있다. 성빈은 호언장담하는 섹스 고수 3명을 만나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로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