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와 더불어 관련 장비산업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반도체장비업계에 기업 인수합병(M&A)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올들어 일부 업체는 늘어난 주문으로 매출신장을 기록한 반면, 중하위권 업체들은 수주감소로 극심한 매출부진에 시달리는 등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M&A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매출부진이 주가하락으로 이어져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유동성 문제 등 자금난에 봉착한 몇몇 업체들은 경영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기업을 매각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비업계에 또 다시 M&A설이 확산되는 것은 무엇보다 수급균형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90년대 말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한 장비업체들은 크고 작은 회사를 합쳐 현재 200여개에 달하며, 이 중 대부분이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장비의 대형 수요처는 종전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아남반도체·동부전자 등에서 최근 삼성전자 한곳으로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총체적인 IT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어떤식으로든 업계의 교통정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올들어 I사가 적대적 M&A를 당하거나 A사를 비롯해 최고경영자가 여러차례 교체된 업체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주가폭락기를 이용해 절대지분을 확보, 기업을 인수하려는 적대적 M&A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자 내년 이후를 기약하는 업체들은 M&A를 견제하기 위해 회사정관을 변경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T사는 다음달 초 ‘초다수결의제도’를 도입, 적대적 M&A 방지에 나설 계획이다. 초다수결의제란 적대적 M&A로 인해 이사회가 교체될 때 주총 참석주주 의결권의 90%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70% 이상이 승인했을 때만 이사회가 교체되도록 하는 것으로 통상 참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으로 돼 있는 특별결의사항보다 요건이 강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반도체장비업계의 M&A시장 분위기는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올 하반기 이후 장비업체를 인수할 목적으로 M&A 컨설팅 전문업체를 찾는 기업 매수 희망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M&A컨설팅업체 C사의 관계자는 “한 의뢰기업의 경우 통신장비와 반도체장비업종을 포함해 기업인수비용으로 최대 500억원까지 투자할 용의가 있으니 조속한 시일내에 대상업체를 물색해달라는 요청도 있다”며 “이는 반도체장비업종이 최근 2년 동안 불황을 겪으며 주가나 기업가치가 바닥권에 도달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