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일본 게임업체들이 온라인게임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그 중 반다이는 PC기반 네트워크게임인 CCR의 포트리스블루를 일본 시장내에서 퍼블리싱하면서 이미 30만의 회원을 확보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쿄게임쇼 2002에 출품한 반다이의 포트리스블루 부스.
도쿄 시부야 거리에 있는 대형서점 북퍼스트 게임서적 코너에는 수십 종의 게임 활용서들이 진열돼 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또래 청소년 서너명이 게임 서적을 뒤적이고 있어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니 온라인게임 전문 잡지 로그인이란다. 비디오 게임에 심취해있던 이들은 최근 주위 친구 권유로 온라인게임을 새롭게 접했지만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없어 서점에 들렀다고 했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라 관심이 간다”며 “가끔 온라인게임에 접속한다”고 그 중 한 명이 대답했다.
현재 도쿄 시중에는 5종의 온라인 게임잡지가 출간돼 있다. 온라인 플레이어, 로그인, 파미즈, 넷게임 등에 이어 9월에 창간준비호가 나온 GOLA에 이르기까지 모두 올들어 출간된 것이다. GOLA를 펴낸 감마니아재팬측은 “당장은 아니지만 온라인게임의 장기적인 시장성을 염두에 두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잡지사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디오와 아케이드게임 왕국 일본에 온라인게임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온라인게임 관련 잡지가 5개나 생긴 것도 이같은 징후에 가깝다. 더욱 확실한 것은 일본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일본 게임산업협회(CESA)의 시각이다.
CESA는 9월 개최한 도쿄게임쇼 2002에서 올해 게임쇼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가 온라인게임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CESA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내 DSL 가입자가 4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초고속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며 “때문에 많은 비디오게임 플랫폼이 브로드밴드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으며 곧 많은 서비스들이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비디오게임이 대세를 이루는 도쿄게임쇼에 온라인게임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만 해도 상당히 큰 변화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에 부는 온라인게임 바람은 아직 미풍에 가깝다. 현재 일본 게임시장에서 온라인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5% 안팎으로 미미하다. 1조5000억엔 규모의 일본 게임시장 가운데 1000억엔도 채 되지 않는다. 90% 가량이 비디오게임과 아케이드게임이 양분하고 있으며 나머지를 모바일게임, PC게임, 온라인게임이 나눠먹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PS2용 네트워크 게임 1호인 파이널팬터지의 판매추세가 이같은 상황을 잘 말해준다. 비디오게임인 스퀘어의 파이널팬터지는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300만∼400만장의 판매고를 돌파한 대작 게임중 하나다. 이 가운데 소니와 스퀘어가 네트워크형 시장을 위해 시리즈11을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성적은 예상대로 참담하다. 고작 12만명 정도의 유료 등록자수를 확보했을 뿐이다. PS2에서 네트워크 접속을 지원하는 유닛이 15만∼16만대 팔렸으니 파이널팬터지11의 판매성적이 이해가 된다.
온라인게임에 대한 연구논문을 쓴 도쿄대 위정현 연구교수는 “강의를 듣는 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게임에 대한 인지도를 조사해보면 150명 가운데 7∼8명만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하는 수준”이라며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이처럼 온라인게임이 더디게 발전하는 것은 우선 일본 게이머들의 성향과 관계가 깊다. 20년동안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통해 혼자 게임을 즐겨온 일본 게이머들에게 온라인상에서 모르는 사람과 대적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개인 능력보다는 상호관계가 더 중요한 온라인게임의 특성은 상당히 생소한 문화라는 것. 또 버그 출현과 패치를 통한 보강이 일상화된 온라인게임의 경우 조그만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쉽게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게다가 현재 DSL 회선이 400만개가 깔렸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정보검색을 위한 수요일 뿐 온라인게임 활성화의 분기점인 크리티컬 매스를 확보하는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캡콤의 요시키 오카모토 전무는 “한국의 경우 브로드밴드 가입자가 500만명일 때 온라인게임 붐이 일었으나 일본은 총 인구나 게임성향을 감안할 때 1500만명 가량은 돼야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네트워크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접속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데다 아직 불안정한 접속과 느린 속도, 제한적인 과금방식,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 등이 한계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게임 제작사들의 태도다. “큰 시장(비디오 게임)을 두고 누가 굳이 작은 시장(온라인게임)에 들어가겠냐”는 닌텐도 회장의 말처럼 아직은 온라인게임에 대한 리스크를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일본 게임업체들의 입장이다. 특히 일정량 판매된 이후에는 수익이 급증하는 비디오게임 시장과는 달리 온라인게임은 서비스 개시후 끊임없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이에 따른 서버운영 비용도 덩달아 높아져 수익성이 저하된다는 사실에 주저하고 있다. 파이널팬터지11의 경우도 60억엔 개발비 가운데 서버 운영비가 30억엔으로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일본 게임의 미래전략 가운데 하나가 온라인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는 공감하고 있다. 일본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경우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모바일게임, 온라인게임 등 새로운 게임유형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위기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니는 브로드밴드@홈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PS2 콘텐츠의 네트워크화에 대비하고 있다. 파이널팬터지11 이후에 노부나가의 야망, 카탄, 모두의 골프, 비너스&브레이브스 등의 PS2용 온라인게임을 올 말부터 순차적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소니의 후쿠나가 부사장은 “서버 운영에 대한 비용 부담으로 인해 온라인게임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기본입장은 비디오게임뿐만 아니라 온라인게임 시장도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도 인터넷 접속을 지원하는 X박스 라이브와 관련 타이틀 10여종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캡콤도 현재 50여종의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상당수를 네트워크형 타이틀로 만들고 있는 등 이같은 추세에 대비하고 있다.
<도쿄=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박스> 한국 온라인 게임 "선전"
‘거대한 해일이 될 것인가, 찻잔속의 태풍이 될 것인가.’
일본 게임시장에서 온라인게임은 마이너리티지만 그 중에서 PC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 온라인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 편이다. 물론 아직 시장이 미미하기 때문에 메이저라는 것이 당장은 큰 의미가 없지만 미래전략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향후 시장판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
현재 일본에는 엔씨소프트재팬, 한게임재팬, 게임온, 넥슨, 강호 등과 반다이를 통해 퍼블리싱하고 있는 CCR, 감마니아재팬을 통해 공급하고 있는 나코인터랙티브 등 10개에 가까운 업체가 있다. 모두 PC기반 온라인 게임들이다.
지금까지 한국 온라인게임의 일본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다. 엔씨재팬은 유료회원 4만명 안팎을 확보하고 있으며 한게임재팬 역시 120만명 회원에 운영비에 대한 손익분기점은 넘어서고 있다. 감마니아재팬은 올해 안으로 유료회원 2만명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여러 곳에서 좋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포트리스블루의 경우 반다이가 대대적으로 퍼블리싱을 진행하고 있으며 벌써 3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라그하임을 이터널 카오스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하는 감마니아재팬은 이미 마니아 층이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몇몇 사용자의 경우는 하루 15∼20시간 동안 게임에 접속할 정도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게임업체들의 갈 길은 바쁘기만 하다. 아직 온라인게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일본에 온라인게임을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동시에 비디오 콘솔 기반이 아닌 키보드에 익숙한 PC기반 온라인 게임으로 일본 게이머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 비디오게임 메이저들이 온라인게임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PC 온라인게임 수요를 빼앗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협요인이 된다.
때문에 게임온, 엔씨소프트, 넥슨, 강호, 한게임재팬 등 5개 업체가 지난 8월 온라인 포럼을 결성하기도 했다. 정보공유도 하고 일본 비디오게임 메이저들의 네트워크 게임시장 진출에 대비해 공동 대응을 하자는 의도에서다. 한게임재팬 천양신 사장은 “온라인게임은 다른 새로운 게임 유형이자 서비스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개발에만 주력해온 일본 게임사들에는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어떤 문화든 자기식으로 흡수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상 콘솔 기반의 네트워크 게임이 한국 온라인업체에는 상당한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며 포럼 결성의 배경을 설명했다.
도쿄대 위정현 교수는 “비디오게임이 강세를 띠고 있는 일본에서 한국의 PC기반 온라인게임이 주류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일본 게이머들이 PC게임에 익숙해지도록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으면 상당한 수요층 확대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서버 네트워크 기술,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한국 게임의 강점을 살리면서 일본의 수준 높은 게임 기술을 접목해 나간다면 일본을 거점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모델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인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