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FTA와 무역규제

 ◆이계형 무역위원회 조사국장 diallee@orgio.net

 최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2000년 1월말 현재까지 WTO에 통보된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FTA 체결 건수는 152건에 달한다. 95년 80건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큰 증가폭이다. 이러한 국가간 FTA에 대해 종전에는 지역 블록화라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평가됐으나 최근에는 회원국들이 실질적으로 평등하고, 역외국에 대해 차별적인 요소가 개입돼 있지 않으면 예외적으로 지역주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다자주의와 지역주의는 이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자주의는 매우 중요한 국제 통상질서의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지역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실리적인 면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FTA를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해외시장 진출이나 외자 유치시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된다. 첫째, 차별적 관세로 시장접근에 애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양자 또는 지역간 FTA로 인해 우리 수출업자들이 경쟁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담하게 됨에 따라 경쟁력이 약화되고 시장진입 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FTA가 서비스업 영역까지 확대되면서 통신·금융·관광 등의 서비스업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 약화가 초래될 수 있다.

 둘째, 인증·표준 등 측면에서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FTA 체결국간에는 상품의 생산 및 제품기준과 관련된 무역장벽이 제거되지만 역외국인 우리나라 상품은 각종 생산 기준과 규정으로 인한 부담을 그대로 안게 됨에 따라 경쟁력이 약화되고 시장진입이 상대적으로 늦어질 수 있다. 셋째, 해외투자 및 외국인투자 유치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해외직접투자 결정요소로서 FTA체결 여부를 포함한 경제적인 긴밀도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요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아 외국인투자 유치에 불리하게 된다. 대외협상력도 약화가 불가피하다.

 우리는 FTA가 체결되면 양국의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에 따른 폐해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국간 FTA가 체결된다 하더라도 불공정한 무역에 대한 대응수단인 무역구제제도(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조치 등)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오히려 FTA 체결시 무역구제제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각국은 FTA를 체결하면서 양국간 교역에 따른 불공정한 무역(약탈적 가격하락, 보조금에 의존하는 낮은 가격, 상대국가의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수준의 수출급증 등)에 대해 어떠한 대응 수단을 마련할 것인지 다양한 무역구제의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고 있다.

 먼저 반덤핑과 상계관세 분야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여러 국가를 규율하는 다자규범인 WTO 반덤핑규정(상계관세규정 포함)을 양자간에 그대로 적용해 양국간의 특례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협정을 체결한 경우도 있고 WTO 규정을 양국간에 한해 완전히 배제시키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무역구제 수단인 세이프가드 조치 분야는 더 복잡하다. 세이프가드 조치 자체가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제도라는 점에서 WTO상의 세이프가드 조치 권한을 FTA체결 당사국은 여전히 갖고 있다.

 이 같은 다자 차원이 아니고 양자 차원에서 양국간만 적응되는 세이프가드조치를 도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형태의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상품목을 농산물에 한해 규정하는 경우와 공산품까지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세이프가드 존속기한을 제도 자체의 소멸시점을 정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경우와 소멸시점을 정하지 않고 계속 세이프가드를 존속시키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다른 국가들과 FTA를 논의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효율적인 무역구제제도를 FTA협정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다. FTA협정은 우리의 통상제도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잘 디자인하는 것은 앞으로의 교역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도가 잘 정착되고 원활히 운용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