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통신강국으로 간다>(5)코리아가 아닌 브랜드로 살아야

사진; 정보통신부는 소프트웨어진흥원을 통해 벤처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도와주고 있다. 런던iPark 직원과 입주업체 관계자들.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귤화위지(橘和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자주 등장한다. 회남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해버린다는 것.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척박한 환경에 놓이면 쓸모없는 물건이 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훌륭한 재원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2∼3년전부터 국내 통신사업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여년간 축적한 나름대로의 기술과 운영능력이 세계 최강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정보기술(IT) 종합 무역상사를 자청하며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출발해 유럽까지 진출했다.

 해외진출이 얼마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의 우수한 씨앗이 ‘탱자’가 아니라 ‘귤’이 되어 호평을 받는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은 해외 진출에 대해 이렇다할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제 이동전화단말기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뿐이다. 서비스, 시스템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아직 씨앗도 뿌리지 못했다.

 ◇유럽 공략의 중요성=한국 통신업계 입장에선 유럽 지역은 아직 생경하다. 그동안 미국에 의존하다보니 유럽지역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나 유럽의 통신은 세계 통신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의 통신사업자들은 국가 단위로 서비스 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서비스중이다. 특히 서유럽 통신업체들은 유럽 지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동유럽, 중남미 통신시장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텔레누르, 소네라, 버진모바일 등 유럽의 통신사업자들은 국가 대상 사업자가 아니며 앞으로의 성장성은 동유럽, 중남미 등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유럽 통신장비업체와 사업자들은 차세대의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선택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현지의 한 국내 통신업계 관계자는 “3세대 이후 표준화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리가 주도한 CDMA 기술과 함께 유럽형 표준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는 아직 단말기만 활동중=유럽의 대형 이동통신 대리점에 가면 쉽게 우리나라에서처럼 각종 단말기를 볼 수 있다. 대부분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중적인 모델 옆에는 한국에서 쉽게 보는 모델이 몇대 놓여있다. 삼성전자 단말기다.

 유럽에서는 얼마전부터 삼성전자의 단말기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노르웨이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단말기는 가격은 비싸지만 디자인이 우수하고 성능이 좋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다”며 “유럽에서 판매 순위 3위”라고 말한다. 보통 단말기 한대 가격이 30만∼50만원인 데 비해 삼성전자의 컬러액정단말기 가격은 80만원에 이르는 고가지만 이미 유럽내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LG전자도 유럽시장의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유럽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첨단 서비스와 자사 단말기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현지 사업자와 추진중이다. 

 제프 리 크리에이티브캐피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아직까지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 브랜드가 한국을 대표할 뿐이며 그외에 IT의 진출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80%에 해당하는 지역에 단말기로 교두보를 확보했지만 거대시장인 통신장비, 솔루션, 콘텐츠 시장에는 아직 진입을 위한 토대도 쌓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현지 네트워크 구축을 이제 시작=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업체 이외에 한국의 통신사업자로는 KT와 SK텔레콤이 유럽에 지사(지소)를 두고 활동중이다. KT는 지난 97년부터, SK텔레콤은 지난해말부터 직원들을 영국 런던에 파견했다.

 유럽 지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하는 유럽시장에서도 온정적인 관계를 토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순용 SK텔레콤 유럽지사 부장은 “지난 1년간 한 일은 현지인들을 만나 인사하고 명함을 건네는 일이었으며 이들과 친분을 쌓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벤처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소프트웨어진흥원은 ‘iPark런던’을 운영하고 있다. iPark런던의 윤재홍 소장은 “IT 관련 업무에 익숙하고 업계 인사와 친분이 있는 현지인을 통해 한국 벤처기업들 유럽 진출을 도와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IT분야에서는 지난 수년간 현지 인맥과 의사소통하는데 중점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현지 상황 파악에 머무르고 있다.

 SK텔레콤 현지 지사는 보다폰, mmO2, 버진모바일 등 현지 사업자와 접촉을 하고 있다. 권순용 부장은 “현재 한국의 이동통신 분야에서 유럽 진출이 가장 유망한 것은 무선인터넷이며 현지 사업자들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단말기 이외의 분야에서 이제 한국 IT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현지화된 브랜드 전략이 필요=노르웨이 오슬로 중심부에는 해병대 출신의 강모씨가 운영하는 ‘남강’이라는 식당이 있다. 한·일·중식을 모두 취급하는 소형 음식점이다. 이 집을 찾는 손님의 90% 이상은 현지인이다. 한국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식당은 개조된 김치인 ‘김치샐러드’ 등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전략을 통해 살아남았다.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식당은 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관광객이 끊기면서 문을 닫았다.

 손진욱 KT 런던사무소장은 “철저하게 현지화되지 않고 우리 방식으로 생각해서 유럽에 진출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유럽에 몸담고 일하는 사람들은 일단 현지 인맥을 활용해 진출로를 확보하고 이후에는 현지인으로 변신,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IT는 현지 인맥쌓기와 함께 브랜드 전략을 동시에 준비해야 5∼10년 뒤 승부수를 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유럽에서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는 미미한 상황이다. 6·25와 월드컵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이다. 제프 리 크리에이티브 CTO는 “코리아라는 브랜드보다는 첨단 IT 브랜드로 현지화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NTT의 유럽 진출과 삼성전자의 브랜드 전략이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유럽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IT가 ‘귤’이 될지 ‘탱자’가 될지는 이제부터의 노력에 달려있다.

 <유럽=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한국 통신사업의 유럽 진출 전략

 - 제프 리 크리에이티브캐피털 CTO jeff@creativitycapital.com 

 기업의 거시적인 해외시장진출 모델은 상품 및 서비스 수출, 기술 라이선싱, 조인트 벤처, 프랜차이징, 파트너십 그리고 흡수합병이 있다.

 NTT도코모는 주요 유럽 3개국에 전략적 투자 및 시장 개척사업을 벌이고 있다. KPN네트워크모바일(네덜란드), E플러스(독일), Bouyoues(프랑스) 등에 적어도 3억∼4억유로 이상 출자했다. 이를 통해 i모드의 시장개척을 하고 있다.

 도시바가 같이 적극적으로 도매시장을 개척해주고 있다. 또 지난 7월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코모 유럽이 2400만유로를 들여 자회사를 세워 i모드의 마케팅과 기술자문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IT기업의 유럽시장 진출은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접근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략적 접근의 기본적 툴은 역시 기업·기술의 경쟁적 우위, 진입장벽, 해외 가용자원, 거래비용 등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가장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은 현지의 마켓 인에이블러(enabler)를 활용해야 한다. 결국 시간과 비용을 고려한 효과적인 시장개척이 관건이 된다. 사실 NTT도코모가 스페인의 텔레포니카에 i모드 플랫폼을 공급판매하기까지 3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따라서 한국기술에 대한 이해와 유럽 현지시장을 두루 잘 아는 유럽현지 회사를 이용하거나 보다 초기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랜 경험, 지식, 네트워크로 정확한 접촉포인트와의 미팅을 빠른 시일내에 제공하는게 가장 일차적인 작업이 된다.

 결국 마켓 인에이블러의 역할이 한국의 IT를 제대로 소화해내고 유럽시장을 정확히 발견해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럽과 한국을 동시에 아는 브로커를 찾기란 쉽지 않고 또 유럽에서의 현지인을 이해·교육시키는 데에도 시간과 비용이 따른다. 협상 진행과정에서는 특히 회사기술에 대한 일반 수준의 대화까지는 무리없이 진행되다가도 구체적으로 유럽회사에 매력적인 상용화 모델을 보여주지 않으면 전혀 다음 미팅으로 진행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의 상용화 성공요인은 무엇이며 한국기술에 대한 유럽의 최종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성취되는지 최대한 수치로 제시해 주어야 한다.

 가령 무선인터넷 기술의 경우 그 기술을 사용하여 한국에서 1인당 월평균매출액(ARPU)이 매달 얼마나 증가해 왔으며, 그 기술의 최종사용자에 대한 가격및 기능적인 혜택에 대해 유럽기술과 비교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전반의 비즈니스 모델링 과정이 현지 마켓 인에이블러가 리드해 주어야 하는 역할이다.

 유럽진출을 위해서는 현지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고 이를 통해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