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단말기 보조금 문제가 2년여 만에 통신시장 최대의 이슈로 다시 등장했다.
보조금 지급 금지 결정을 앞둔 지난 2000년 상반기엔 규제의 타당성이 논란이었다. 이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논란은 2년 전과 유사하지만 내용은 ‘천양지차’라는 것이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2년전 논쟁에서 보조금 규제 찬성론자는 이를 통해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주장을 반대론자가 펼친다.
◇통신산업 경쟁력 강화수단, 보조금=지난 2000년 상반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별칭을 가진 이동전화사업자들은 가입자들이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적자에 허덕였다. 황금알은커녕 부채 때문에 두발로 서있기 힘든 빈사 직전의 부실한 거위였다.
통신산업의 정점인 이동전화사업자의 재정구조가 부실한 상황이 계속되면 서비스 품질뿐만 아니라 차세대로의 이전작업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가입자 유치’라는 지상 최대 과제 앞에 사업자간 과당경쟁이 조성, 공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당시 정통부는 핵심부품 수입에 따른 국부유출이라는 논리로 6월부터 사업자의 단말기 보조금을 전면 폐지키로 결정했다. 이 조치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시기와도 맞물렸다. 보조금 금지로 통신사업자의 적자를 메우고 통신투자로 돌리면 국부유출도 막고 국내 벤처경기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년 전에는 단말기 제조업체, 대리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통신산업의 전반적인 체력강화를 위해 보조금 금지조치가 단행됐다.
◇규제를 위한 규제로 바뀐 보조금 금지=2000년 6월1일. 보조금이 전격적으로 금지됐다. 이후 잠시 보조금이 중단되는 듯했다. 통신시장 규모도 줄었다. 그러나 가입자 유치를 위한 보조금은 계속됐다. 정통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통신업계에선 ‘과징금 규모보다는 가입자 확보가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
결국 정통부와 이동전화사업자간에 보조금을 놓고 일종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영(令)’을 세우는 정통부와 이를 피하기 위한 통신사업자간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사업자의 편법행렬은 쉴새없이 이어졌고 정통부는 1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특정 사업자에게 부과하기도 했으며 아예 전기통신사업법(사업법) 개정안에 금지조항을 포함시켜 국회에 상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엄포에도 불구하고 보조금이 없어지지 않자 급기야 신규가입자 모집 정지라는 강수를 뒀다. 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면 통신사업자들의 대표는 입건돼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당초 보조급 지급 금지의 취지는 논의의 장에서 없어지고 규제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이를 피할 것이냐는 머리싸움만 남았다. 통신산업에 대한 염려는 없고 ‘규제의 효율성’에 대한 걱정만 있는 것이다.
◇정부기관간 주도권 확보수단, 보조금=보조금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정통부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는 올들어 통신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를 부쩍 강화했다. 공정위는 지난 상반기 이통사업자의 ‘공정경쟁 선언’을 유도했으며 KT 민영화 이후 KT와 SK텔레콤의 상호 지분 보유를 계기로 독점에 대한 실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달엔 두 회사의 불공정 경쟁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거래위는 통신사업자라 해도 공정경쟁을 해치면 당연히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통부는 규제산업인 통신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관련 규제를 정통부와 통신위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본다. 정통부와 통신위는 ‘터무니없는 모략’이라고 하나 업계 일각에선 이번 이통사업자에 대한 영업정지를 두고 ‘자기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제스처라는 해석도 나왔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보조금 등과 관련해 공정위와 정통부의 입장이 다를 경우 어느쪽 규제를 따라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지난 2년여간 진행된 단말기 보조금 규제의 뒷배경은 수시로 변해왔다.
통신업계에서는 ‘보조금 규제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한 초심을 다시 되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조금 규제는 통신산업 발전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꼬리(수단)’가 ‘몸통(목적)’을 흔드는 우수꽝스런 현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