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만화광 3인

 ‘화장실에서 만화를 보다가 다리가 저려서 못 일어나 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만화를 무척 좋아하시는 겁니다.’

 만화에 대해선 나름의 식견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예스컴의 박기철씨(24)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나름대로의 기발하고도 간단 명확한 방법을 이렇게 소개했다.

 사실 학창시절을 떠올려 만화가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지루한 자율학습시간,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읽던 한 친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황당한 눈빛으로 성큼성큼 다가선 선생님의 손에 낚아 채이는 것은 만화책. 그 책으로 머리를 얻어맞으며 들리는 훈계는 “야, 너 대학 안가냐”. 학창시절 만화 꽤나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겪어보았을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을 가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덧 만화는 저 먼 곳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 있고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신문 보기도 바쁘다.

 그러나 자칭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 세 사람은 아직도 가슴속에 질풍노도의 뜨거운 열망을 담고 자신이 사랑하는 만화를 읽는다고 한다. 이들의 별난 만화사랑가를 들어보자.

 예스컴 박기철씨는 ‘슬램덩크’를 보고 만화에 ‘미친’ 인물. 중학교 2학년 때 집안 사정상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무렵 박씨가 접한 만화가 바로 슬램덩크. 이어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물론 장태관의 ‘아웃복서’, 아즈마 기요히코의 ‘아즈망가 대왕’, 오모토 가즈히로의 ‘아키라’ 등으로 이어지는 만화세상으로 뛰어든 것이다.

 만화를 좋아했던 그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었다. 대부분의 만화광들이 그렇듯 만화책을 수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만화책을 수집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100여권이 넘는 만화책을 버린 충격적 사건 이후로는 수집에는 맘을 비웠기 때문이다.

 박씨는 만화를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에 비유한다. 만화는 영화와 달리 보는 사람마다 머리 속에서 그림을 다시 그리고 내용을 다시 만들어 상상하고 생각하도록 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또 “무엇보다 만화를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장점이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친근하게 말을 붙이기가 쉽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조만간 자신이 직접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 예정인데 같은 만화라도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틀려 다양한 의견을 접해보고 싶어서라는 게 이유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 e셀피아(http://www.eSellpia.com) 전략기획팀의 정종희 팀장(32)은 일본 만화나 무협물을 특히 좋아한다. 특히 그는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고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만화를 높이 평가한다.

 “대히트를 친 ‘미스터 초밥왕’처럼 일본 만화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친숙한 소재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일본 만화의 매력”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초등학교 시절 ‘우주 로보트 킹’을 보고 감명을 받아 만화에 입문한 그는 지금까지 만화곁에서 떠나본 적인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다카다 유조 원작의 일본 만화 ‘3X3 아이즈’, 가와구치 카이지의 ‘침묵의 함대’, 히로카네 겐시이 ‘시마과장’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그는 만화는 상상력을 키워 주는 것 외에도 ‘이런 것도 상품화할 수 있구나’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줘 굳은 머리를 잘 돌아가게 해 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미디어윌이 운영하는 취업정보 사이트 파인드잡(http://www.findJob.co.kr)의 웹마스터 이광욱씨(29)는 자타가 공인하는 재패니메이션 마니아로 그는 만화책과 만화영화 가리지를 않는다.

 그는 중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보여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한 장면에 매료되어 입문하게 됐다고 한다.

 그 후로 대학시절까지 미야자키 작품을 포함한 웬 만한 애니메이션은 모두 섭렵했으며, 수중에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영화만도 현재 200여편에 이른다니 그의 만화에 대한 애정을 알 만하다.

 일본만화는 구성과 짜임새가 뛰어나 성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면이 많다고 그는 나름대로의 작품평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국내 만화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지적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고급 만화방을 늘리는 등 만화를 위한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고 최근 너무 폭력적이고 반항적이며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만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