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디지털TV의 핵심인 시스템온칩(SoC)을 독자 개발하기 위해 LG전자·삼성전자·소니·미쓰비시 등 한국과 일본 업체가 생사를 건 한판승부에 돌입한 가운데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인 오크테크놀로지가 HDTV용 SoC와 소프트웨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테라로직을 인수, 거센 반향이 예상된다.
테라로직은 표준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각 디지털방송 규격(ATSC-VSB, DAB-COFDM, QPSK)을 모두 지원하면서 대용량 디지털 콘텐츠를 처리할 수 있는 CPU와 메모리를 원칩화한 SoC를 갖고 있는 데다 소니·삼성전자·미쓰비시가 상호 견제와 기술력 확보를 위해 각기 지분을 출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테라로직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디지털TV SoC는 선두주자인 소니가 아날로그TV 시장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SoC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디지털TV시장을 앞서 개척해온 LG전자가 자체 MPEG 기술에 ARM의 최신 임베디드 CPU ‘ARM10’을 라이선스해 4세대 DTV용 SoC 개발을 마무리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와 미쓰비시는 반도체·가전 각 사업부문의 기술인력을 총동원해 대응칩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오크테크놀로지는 테라로직의 디지털TV칩과 기존 DVD플레이어 및 프린터·복사기용 디지털이미지처리칩 기술을 연계해 한일 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홈네트워크시장을 중점 공략한다는 계획이어서 양국의 반도체·전자업체들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손영권 오크테크놀로지 회장이 존 캐스터 테라로직그룹 부사장(전 테라로직 CEO)과 함께 내한, 진대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과 백우현 LG전자 사장(CTO) 등과 회동을 가졌으며 이미 일본 업체들과도 모종의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특히 손 회장은 재미교포이자 인텔코리아 초대사장, 퀀텀 본사 사장,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등을 지내면서 국내업체들과 관계가 탄탄한 데다 테라로직의 SoC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따라 잡는 데는 양국 모두 상당기간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어서 SoC 개발 프레임에 대한 일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오크가 주주이자 주 고객사인 한일 업체들을 만나 자사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모종의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오크의 진출에 따른 양국의 디지털TV용 SoC 프로젝트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