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랠리’의 시작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반등인가.
가격폭락과 수요부진으로 5개월간 침체국면을 지속했던 TFT LCD 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비록 가격하락세는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으나 수요는 지난달 중반을 기점으로 뚜렷한 회복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면서 그동안 가격폭락을 부채질했던 업계의 재고량이 2주 전후의 적정물량 수준까지 근접하고 있다. 물론 업체별로 주력모델과 공급업체가 달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10월 중순 이후 수요 회복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후사정을 종합할 때 이같은 수요회복세는 적어도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회복의 배경=TFT LCD 수요가 5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11월말)과 크리스마스(12월말)로 이어지는 연말특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통상적으로 4분기 PC수요의 60% 이상이 집중되는 이 기간에 맞춰 PC 및 모니터업체들은 LCD모듈의 사전 구매에 나선 것이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LCD모니터나 PC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1달 전부터 LCD모듈 구매에 나서며 구매가 몰릴 것에 대비해 달포 전에 미리 구매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상 최악의 미국 서부항만노조 파업사태가 아이러니하게 LCD 수요회복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부항만사태로 해운에 의존하는 모니터용 브라운관(CDT)의 미국내 반입이 다소 줄어든 반면 LCD는 항공운송으로 가능, 모니터업체들이 납기를 맞추기 위해 LCD를 대체 채용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 하이디스의 관계자는 “파업기간에 미국내 LCD 유통재고가 적지 않게 소진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기수요의 감소=그동안 LCD 수요가 부진했던 것은 무엇보다 CDT 대비 LCD가격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 LCD 가격은 한때 15인치 모듈기준으로 동급의 CRT(17인치) 대비 3배가 넘는 260달러까지 치솟아 PC사용자들의 대기수요가 극에 달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가격이 30% 이상 하락, ‘이제는 LCD모니터를 구매할 만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LCD 수요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가격폭락에 힘입어 CRT와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대기수요가 점차 실질 구매로 넘어가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LCD모니터뿐만 아니라 PC 자체의 대기수요가 줄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 99년 이후 IT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PC 교체수요가 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4분기 들어 PC 대기수요가 실제 수요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PC메이커들이 LCD모니터를 기본으로 탑재하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져 LCD 수요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격에 미치는 영향=4분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TFT LCD 수요가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이것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요가 분명 회복되고 있지만 올 연말 PC특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데다 TFT LCD업계의 잇따른 5세대 라인 가동으로 공급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수급상황과는 무관하게 TFT LCD업계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 내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도 향후 가격추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삼성전자·LG필립스·AUO 등 업계 1∼3위 업체들은 대만 후발업체들의 추격과 5세대 투자를 봉쇄하기 위해 저가공세를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HP와 컴팩의 합병으로 출범한 HPQ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 TFT LCD업체들의 가격공세도 LCD 수요회복에도 불구, 가격하락을 막지 못하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HPQ는 특히 최근 세계 최대 PC업체인 델과의 격차가 벌어지자 공급량을 확대하고 있어 향후 HPQ 물량을 선점하기 위한 LCD업체들의 경쟁은 심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PC시장이 기대치에는 다소 미달하더라도 계절적 요인이 분명히 잔존하고 있는데다 LCD 공급가격 하락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LCD 수요는 당분간 상승국면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이것이 바닥까지 떨어진 업계의 상황을 얼마나 반전시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