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이오넥스가 우여곡절 끝에 퀄컴으로부터 CDMA 방식의 단말기용 모뎀칩(베이스밴드)을 상용화할 수 있는 주문형반도체(ASIC) 라이선스를 확보함에 따라 그동안 숙원이던 이동통신 핵심칩 국산화의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물론 핵심칩의 완전한 국산화는 국내 이동전화단말기업체들이 이오넥스의 칩을 탑재, 상용 가능한 단말기를 만드는 절차가 남아 있으나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기 위해 ASIC 라이선스 계약에 인색하기 그지 없던 퀄컴이 기술력을 인정해 라이선스를 허용한 만큼 상용화의 가능성이 높다.
또 듀얼모드칩이 필요한 상당수의 국내 단말기제조업체와 퀄컴 이외의 추가 공급업체를 찾고 있던 해외 업체들이 이오넥스와 퀄컴의 라이선스 체결을 기다려온 만큼 시제품 공급이 시작되는 이달부터 발빠른 단말기 개발경쟁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번 계약의 이면에는 퀄컴이 원천기술 특허권을 바탕으로 상당한 라이선스료를 요구한 데다 이른 시일 내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로열티 비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유치 등 추가조치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CDMA 모뎀칩 개발 현황=현재까지 자체 기술력으로 CDMA 모뎀칩을 개발, ASIC 라이선스를 따낸 국내 업체로는 이오넥스가 처음이다. 기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다국적 반도체업체 필립스와 LSI로직 등도 모두 기술력과 마케팅력에서 퀄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퀄컴과의 장기적 관계를 고려해 단말기나 기지국 제조에 필요한 라이선스만 확보, ASIC 라이선스는 체결하지 않고 퀄컴의 모뎀칩을 사다 쓰는 형편이다. 물론 일부 업체가 내부 단말기(캡티브 마켓)용으로 자체 개발한 칩을 소규모로 사용하고 있지만 ASIC 라이선스를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외부 판매도 불가능하고 퀄컴의 눈치도 봐야 한다.
연간 4000만개 넘게 퀄컴의 모뎀칩을 사다 쓰는 국내 단말기업체들도 핵심칩 국산화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모뎀칩 국산화 왜 필요한가=치열한 개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동통신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단말기의 핵심인 모뎀칩을 자체 개발하거나 기술력을 갖춘 협력업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국내 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CDMA시장에서는 퀄컴 이외에는 모뎀칩을 공급할 업체가 없는 상황이어서 가격 선정이나 공급일정·로열티문제 등을 모두 퀄컴에 끌려가고 있다.
퀄컴은 이 같은 지배력을 바탕으로 주파수 처리 기능, 데이터 저장 및 전송 기능, 카메라 기능 등 단말기의 주요 기능이 한데 통합시키는 시스템온칩(SoC)을 개발해 국내 여타 반도체·부품업체들의 존립 마저 뒤흔들고 있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우리 업체들이 CDMA 방식을 기반으로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퀄컴의 독주를 견제할 핵심칩업체를 육성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또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고부가가치의 핵심칩 국산화와 기술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향후 과제=이오넥스가 최종 상용화에 성공하려면 단말기업체들과의 윈윈이 가능한 협력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기술을 상호보완하고 해외 시장을 공동개척해야 한다. 모뎀칩을 개발해놓고도 상용화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시는 어느 누구도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이오넥스는 상당한 금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퀄컴에 납입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퀄컴의 독주를 방치해둔 과오 때문에 CDMA기술을 상용화한 공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로열티문제로 우리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공동의 대응방향을 개척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