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한국산 D램 상계관세 부과 주장` 뭘 노리나

 지난 6월 독일의 인피니온테크놀로지가 유럽연합(EU) 집행위에 한국산 D램 상계관세 부과를 주장한 것과 유사한 내용의 주장을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내놓아 마이크론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국내 D램업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견상 이번 마이크론의 제소는 얼마 전 독일 인피니온과 마찬가지로 한국산 D램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주 타깃은 하이닉스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생존경쟁 관계에 있는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경쟁업체를 상대로 물고 물리는 소송전을 벌이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하이닉스의 매수주체로 부상하며 밀월관계를 제안했던 마이크론이 돌연 태도를 바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반도체업계의 생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이크론의 요구=마이크론은 인피니온보다 더 센 강도의 주장을 들고 나왔다. 정부의 불공정 지원의혹과 더불어 정책자금 지원의 특혜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것. 즉 정부가 정책자금을 기업들에 지원하며 시중금리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 특혜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외교통상부 등 우리정부와 업계는 인피니온은 물론 마이크론이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내 D램업계에 불공정 지원을 한 적도 없을 뿐더러 마이크론이 의혹을 제기한 기술개발 촉진, 투자촉진 등 목적의 정책자금 금리에 대한 특혜도 없다는 것. 심지어 일부 정책자금 금리가 시중 금리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마이크론의 적자지속 이유가 한국정부와 한국 D램업체 때문이 아닌 세계 D램 시장의 불황 때문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그만큼 의혹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며, 우리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목적은=‘네가 어려우니 내가 도와주마’는 식으로 지난해말 하이닉스와 접촉, 메모리 부문 매입 및 비메모리 부문 공조전략을 제시하며 둘도 없는 동지의 역할을 자처했던 마이크론이 갑자기 하이닉스 내치기의 자세로 돌변한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니다.

 지난 92년부터 99년까지 우리나라와 미국정부가 D램 반덤핑문제로 맞대결을 펼치던 이면에 마이크론이 서 있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마이크론의 1년 전 하이닉스 끌어안기 전략이 오히려 충격인 셈이다.

 마이크론이 상계관세 부과의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두가지 이유로 해석된다. 하나는 내환 잠재우기다. 8분기 연속적자, 하이닉스 인수실패, 설비투자 실기, 주력제품화한 DDR SD램의 생산부진 등으로 닥친 경영권에 대한 책임 추궁을 화살을 외부로 돌려 무마해보겠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업계 퇴출 1순위로 손꼽히던 하이닉스가 대선주자들의 ‘선정상화 후처리 공약’과 임박한 채권단의 채무 재조정 등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사전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채권단이 이달 중순께 채무조정 등의 구조조정방안을 내놓기로 한 상황에서 채권단의 주위를 환기시켜 어떻게든 결정에 영향을 미쳐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퇴출-생산량 축소로 인한 D램가격 급등-D램 호황-불황탈출 및 흑자달성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호기를 가만히 앉아서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관측했다.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은=마이크론의 제소로 외교통상부는 제소후 20일 이내에 양자협의를 거쳐야 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협상 규정에 따라 조만간 미국정부측과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로선 제소 당사자인 마이크론이 큰맘 먹고 제소한 사안이니만큼 양국간 사전협의에서 제소가 취하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때문에 사전협의는 제소의 뼈대는 그대로 두되 명백한 오류가 드러난 제소 항목에 대해선 수정 또는 삭제하는 방식으로 서류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상계관세 부문에 대해서는 과거 EU 집행위를 대상으로 실시한 무혐의 입증을 위한 대응을 고수하는 한편 정책자금 지원 관련 부문에는 특혜금리가 없다는 사실을 상대에 주지시킬 예정이어서 흠잡힐 부분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상무부의 예비판결까지는 85일 가량이, 최종판결까지는 225∼325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이같은 소송은 흔한 일이어서 미국 수출에 당장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지 실추 등의 마이너스 요인도 없어 우려할 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