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을 봤다면 지축을 울리며 치닫는 야생 들소들의 질주 장면과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벅찬 감동을 잊기 힘들 것이다.
TV 보급과 함께 지난 10여년 동안 급속히 VCR 보급이 확산됐지만 관객들이 여전히 극장에서 감동의 추억을 찾고 싶어하는 것은 극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초대형 화면과 돌비음향의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극장에서만 즐길 수 있던 대형 화면의 생생함과 음향을 통해 느끼던 현장감을 가정에서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올들어 본격화된 다양한 디지털TV 및 DVD플레이어 등 홈시어터시스템 관련 기기의 잇단 출시현상은 극장을 통해서만 대형 스펙터클 영화를 즐기던 마니아들에게 더욱 반갑게 다가오고 있다.
올해 본격적인 도입기를 맞은 홈시어터시스템시장은 급격한 기술 발전에 힘입어 ‘극장을 안방으로’ 가져온 주인공으로서 개화기를 향해 힘차게 내닫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외산 가전업체들의 DVD플레이어와 디지털TV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시장이 본격적인 시장형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세계 최고의 디지털TV 기술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은 월드컵을 계기로 본격적인 디지털TV시장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스레 DVD플레이어와 스피커를 연결한 홈시어터시스템산업으로 파생돼 가기 시작했고 홈시어터 관련 가전기기는 이제 휴대폰처럼 생활 속의 가전으로서 자연스럽고도 확고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홈시어터시장은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된 △고선명·대화면 디지털TV 보급의 확대 △DVD 수요의 급신장 및 DVD타이틀의 활성화를 계기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더욱이 핵가족화라는 추세와 함께 외출보다 가족 단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생활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홈시어터시장은 날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어느새 혼수가전 리스트에서도 컴퓨터와 함께 영순위품목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홈시어터시스템시장은 올해 340만대, 2003년에는 55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11테러를 겪은 이후 세계적으로 야외활동을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도 전세계 홈시어터시장의 확산을 가속화한 주요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극장의 감동을 안방에서 즐기려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업계가 파악한 홈시어터시장 규모(TV 제외)를 보면 연말까지 15만대, 내년에는 26만대로 예상되는 등 오는 2005년까지 매년 20∼30% 정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처럼 올해 전자산업계의 가장 큰 테마로 떠오른 홈시어터시스템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디지털AV의 출시와 맞물려 가히 홈시어터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른 국내외 업체들의 행보도 가빠지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가 홈시어터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와 전략을 보인 가운데 종전에 오디오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던 이트로닉스·아남전자·롯데전자 등 중견 AV업체도 홈시어터 중심의 사업 재편에 나섰다. 종래 단순한 제품 소개에 그치던 외산 가전업체들도 디지털TV와 연계한 홈시어터시스템 판매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하이마트 등 대형 유통점에는 홈시어터 시연장을설치해 안방극장을 꾸미려는 고객들이 반드시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눈이 시리도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자연의 모습, 그리고 화려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각종 라이브 쇼를 실컷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홈시어터 시연장은 지금 당장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일반인들에게 홈시어터의 위력을 필요충분하게 보여주는 장이 되고 있다. 백화점이나 양판점의 가전매장에서 웅장한 화면과 음향으로 고객을 끌고 있는 것도 이젠 아주 자연스런 모습이 되고 있다.
업계의 고객끌어들이기와 홈시어터 보급 확산 노력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월드컵으로 절정에 달한 디지털TV 보급이 지난 9월까지 한풀 꺾였지만 가전업계는 지난달 잇따라 대형 디지털TV 가격인하를 단행, 마니아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PDPTV의 경우 지난달에 20% 이상의 가격인하를 단행했고, DVD플레이어나 VCR도 최저 20만원대의 보급형 제품까지 등장해 마음먹고 안방극장을 구성하려는 마니아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또 170만원대 브라운관 방식의 디지털TV, 400만원대 PDPTV, 990만원대 LCDTV 등 소비자들의 형편에 따라 다양한 디지털TV를 구매할 수 있다. 올초에 비해 30% 이상 내린 가격으로 대형화면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DVD리시버와 플레이어 스피커 등을 일체형으로 갖춘 제품까지 다양하게 출시돼 홈시어터를 구축하려는 사람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바야흐로 홈시어터시장이 만개한 것이다.
반드시 TV와 DVD플레이어 스피커 형태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홈시어터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PC에 더욱 익숙한 젊은 세대는 DVD드라이브와 10만∼60만원대 스피커를 장착한 PC로 자기 방에서도 생생한 화면과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이제 영화관 가기는 외출을 동반한 일종의 행사적 성격이 짙어졌다. 홈시어터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로 많은 사람이 가족 중심의 영화관을 구축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현상을 경험하게 될 전망이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은 이제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마저 바꾸면서 새로운 사회문화적 코드까지 부여하고 있다. 홈시어터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잡을 홈네트워크 환경에서, 가정정보화를 촉진하고 생활의 편리함을 약속하는 디지털 세상의 게이트로서 그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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