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39)쥬라기원시전(1)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장면마다 녹아 있는 기획력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어느 정도의 내공이 쌓여야 저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자괴감에 마음만 조급해지기도 한다.

 처음 쥬라기원시전(이하 쥬라기)을 기획하던 라온은 우리들의 열정과 기획력을 굳게 믿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쥬라기를 기획한 지 벌써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라온은 많이 부족하기만 한 기획력에 깊이 반성하고 있다. 사실 그 많은 작업자들과 함께 하나의 컨셉트를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일 것이다. 더욱이 산업 여건마저 열악한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고통의 터널을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알게 돼 앞으로 가야할 방향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국산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잘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으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처음 라온을 설립할 당시의 우리는 경력이 일천한 상황에서 단지 눈동자에 타오르는 열정만을 갖고 있던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코 최고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린 결론은 하나다. 바로 ‘정도(正道)를 걷자’는 것이었다.

 그 정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라온이 그 정도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라온의 ‘합리적인 미련함’은 시작됐다. 마케팅과 펀딩을 책임진 대표, 작품의 품질을 책임진 총감독, 제작을 책임진 필자, 그리고 관리를 책임진 관리팀장까지. 우리는 각자의 분야에서 미련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만으로 일을 처리했다. 만약 안되면 될 때까지라도. 그렇게 2년여를 끌어왔으니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독자들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된 쥬라기는 이제 TV를 통해 시청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첫방송을 하던 날, 전직원이 호프집에 모여 건배를 하던 그 날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2년 전의 시절로 필름을 돌려보자.

 겨우 5명으로 시작된 라온은 전직원(?)이 국어사전에 매달려 하루를 꼬박 보내며 찾아낸 순수한 우리말 ‘라온’(즐겁게, 행복하게 라는 의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마냥 즐거워하기만 했다. 위자드소프트로부터 ‘쥬라기원시전2’라는 게임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투자를 받아 묵동에 위치한 조그마한 빌라를 전세내어 그곳에서 쥬라기 기획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시나리오를 작성해 준 조정희 작가는 매번 너무 멀다며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회의가 재미있었는지 항상 올 때마다 즐거운 표정을 지어주었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 있어 한가지 원칙만을 고수하였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없는 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고 모두가 생각했었기에 별로 어려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게 진행된 시나리오 작업과 그 뒤에 따르는 설정작업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행복한 작업이었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처음부터 데모를 만들지 않고 본편 에피소드를 만들기로 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일해 그림이 완성되고 그 위에 사운드를 입히던 날, 모두는 스튜디오에서 주제가를 들으며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까지 참여해 주었던 모든 스텝들에게 지금도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다시 한번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들과 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이었고 최선을 다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을 본 쥬라기는 이제 프리세일을 위한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펀딩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렇게 계획했던 대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재미가 없어서인지 드디어 창사 4개월만에 첫번째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라온픽쳐스 이상주 PD chiwoo@raonpicture.co.kr>